본문 바로가기

연예 사회 경제 이슈 및 뉴스 인물 정보

1호가될순없어 개그맨 박준형 김지혜 반포자이 90평대사는집 프로필 나이 배우자 자녀 학력 데뷔 개그활동

 

 

 


박준형 프로필 나이 신체 키 몸무게 배우자 자녀 학력 개그활동 

출생 1973년 12월 22일 (47세)

신체

185cm, 87kg, 280mm, AB형

배우자

김지혜(2005년 결혼 ~ 현재)

자녀

장녀 박주니(2007년 3월 29일생)

차녀 박혜이(2009년 4월 24일생)

학력

서울신정초등학교 (졸업)

신서중학교 (졸업)

관악고등학교 (졸업)

인하대학교 (경영학 / 학사)

데뷔

1997년 KBS 13기 공채 개그맨

개그 활동

KBS (1997년 ~ 2008년, 2019년 ~ 2020년)

MBC (2008년 ~ 2010년, 2014년)

tvN (2011년, 2012년 ~ 2013년)

SBS (2012년 ~ )

 


1. 개요


대한민국의 개그맨으로 KBS 공채 13기.

 

인하대 경영학과 92학번으로, 1996년 12월 KBS 공채 13기에 합격, 1997년에 데뷔. 2005년에 인하대학교에서 연극영화과가 생기자 정종철과 아내 김지혜가 재입학해 동문이 됐다.

 

개그콘서트의 최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며 갈갈이패밀리의 수장이다. 개그콘서트만으로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일한 수상자이다. 90년대 정통 코미디의 시대가 저물고 버라이어티로 대세가 넘어간 상태에서 정통 코미디로만 상을 받은 참으로 대단한 성과였다.

 

또한 지상파 3사와 tvN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코빅 무대를 모두 밟아본 최초의 인물이다. 이후 JTBC의 코미디인 장르만 코미디에도 출연했다.

 

대학로에 극장인 갈갈이홀을 설립하고 그 곳에서 끝없이 개그를 반복적으로 연마해서 검증된 코너를 지상파 코미디로 가져오는 시스템을 최초로 적용했고 실제로 대성공을 거둔다. 실제 웃음의 예습을 하게되는 그 시스템으로 인해 수많은 개그 스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개그콘서트에서 함께 개그를 하던 미녀 개그우먼 김지혜와 열애하다가 2005년에 결혼했다. 2007년에 박주니를 얻었고, 2년 후인 2009년에 박혜이를 얻었다.

 

2019년 8월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를 계기로 다시 개콘으로 돌아왔다. 생활사투리와 바바바브라더스로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섞여서 개그콘서트 부활에 앞장섰다.2019 KBS 연예대상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또 다시 최우수 코미디언상을 수상했다. 2002년 최초의 연예대상때 코미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적이 있는데 20여년만에 다시 받게됐다. 2020년 6월 개콘이 폐지할 때까지 후배들과 개콘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

 

2020년 5월부터 개그맨부부의 리얼예능 jtbc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중이다. 소탈하고 리얼한 부부생활을 보여줌으로서 제2의전성기를 구가중이다.


2. 개그맨 활동


개그맨이 된 이유는 초등학교때부터 꿈이었었다고 한다. 하루는 집에서 놀던 중 어머니가 김장을 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깍두기무를 들어서 앞니로 갈아보다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개그본능을 깨닫고 공개채용에 응모하여 개그맨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SBS의 좋은 친구들이라는 프로에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당시 아마추어였던 박준형이 출연해 전유성을 웃긴 적이 있다. 이후 왕중왕전에 출연해 또 한 번 웃겼다. 이 코너에 출연했던 다른 일반인들과 다르게 특히 제대로 된 구성으로 제대로 된 개그를 해서 웃겼다는 점에서 대호평을 받았다. 어느 면에선 아마추어 시절부터 싹수가 보였던 인물. 이때의 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상플러스에서 밝힌 박준형의 개그맨 공채는 매우 힘들었다고. 무려 8번 낙방했다고 자신이 밝혔다. 9번째로 힘들게 개그맨이 되어서 개그하다가 얼굴 때문에 한번에 합격하거나 오히려 스카우트된 정종철과 오지헌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고 한다.

 

개그콘서트에서 뜨기 전에는 아버지의 병원 입원비를 벌기 위해 코미디 프로보다는 주로 리포터로 더 많이 활동했다. KBS 아침마당 토요일 코너에서 리포터로 출연해 아주머니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그때의 기믹도 지금의 갈갈이가 아닌, 마이콜 기믹이었다. 옷에 마이콜 인형도 붙이고 다녔다. 이 당시에는 일주일에 8~10개의 스케줄이 잡힐만큼 바쁘게 활동했고 자연스레 희극인실과도 거리가 멀어졌다고 한다. 최국이 말하길, 선배들이 13기를 집합 시켰는데 박준형은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전화로 사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희극인실에서 전화도 안했다고 한다...

 

이외의 초기 활동은 쇼 파워비디오에서 당시 동료 박성호, 김현기와 함께 거리로 나가서 행인들을 즉석으로 웃겨주는 코너의 주 진행자로 활동했고 그들을 출장개그맨이라고 불렀다. 훗날 비슷한 컨셉으로 토요일 예능 '웃음을 참아라'에서 연예인을 웃기는데 그때는 '스마일맨' 이라고 불렸으며 이를 <스마일맨이야!> 라고 연음시켜 훗날 박승대와 함께 <스마일매니아>라는 회사를 만들게 된다. 캠퍼스 영상가요에서 제작된 대학교 뮤직비디오 시리즈에서 카메오로 매주 출연했다. 그 당시 뮤직비디오에는 <감독 작사 작곡>모두 홍서범으로 나왔는데 사실 그때 작사는 모두 박준형과 박성호가 쓴것이라고.. 출연도하고 작가일도 맡아한 모양이다. 그 당시 프로그램의 피디가 이후 <조선명탐정 시리즈>로 유명해지는 김석윤 감독이였다.

 

어쨌든 박성호, 서동균 등과는 달리 개그맨으로서는 오랜기간 늘 무명으로 지내던 박준형, 임혁필, 이승환, 김현기는 1998년 방송국을 떠난 박승대와 함께 대학로에 나가서 스마일 매니아라는 팀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승대는 공연을 시작한지 2개월 차에 공연의 제작자로서 수익성이 떨어지자 그대로 공연을 접고 대학로를 떠났으며제작자를 잃은 박준형은 남은 개그맨들과 <배꼽빼리아> 라는 팀을 결성. 알아주는 사람 없는 개그 공연을 무려 3년간 쉬지않고 매일 계속하게 된다. 이후 박승대는 갈갈이 삼형제가 뜨자 다시 박준형과 의기투합하여 스마일매니아 라는 기획사를 설립한다.

 

한편, <배꼽빼리아> 공연을 하던 박준형에게 김경민이 어린왕자라는 코너를 들고 같이 개그콘서트에 나가자고 제의해서 함께 연습을 했는데 박준형은 자기 아이디어도 반영되지 않고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싫증이 나서 임혁필을 대타로 꽂아주고 팀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그 코너가 녹화되고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을 보고 부러워서 본격적으로 자기도 개그콘서트에 나가고 싶은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그콘서트에 어떻게 하면 출연할 수 있는지 몰라 고민을 하다가 당시 출연하던 정종철을 보고 너무 재밌어서 연락해 같이 개그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정종철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막상 만나보니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해 친해졌고, 그렇게 같이 극장에서 공연하다가 코너를 짜서 개그콘서트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한다고 알려졌는데...

 

최근 개그콘서트 1회가 공개됐는데 김현기와 박준형이 코너명은 없지만 원년멤버로 출연했다! 정황상 <배꼽빼리아>활동 시기와 개그콘서트 1회가 겹치는만큼 나름 개그계에서 신인으로 발탁되었다가 하차 후 재합류 과정에서 정종철과 만난 듯하다.

 

그를 일약 개그계의 스타로 만든 코너는 갈갈이 삼형제로 어떤 특정스타를 성대모사하는게 아닌 전체적인 더빙성우의 모사를 표현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엄청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엄청나게 강력한 앞니로 뭐든지 갈았다. 초기에는 무를 갈기 시작했지만 무를 갈아서 무언가로 변형시키고, 나중에는 오이,당근,단무지,알로에,수박, 파인애플, 멜론, 늙은 호박 등 점점 단단한 소재로 변경되더니 나중에는 콜라 페트병도 한방에 뚫어버렸다.

 

단, 일반인이 따라하면 앞니와 입술에 심한 상해를 입을 수 있기에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는 경고가 붙어다녔다.소재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물건을 갈았지만 치과의들의 전문적인 검사에 따르면 박준형의 이는 건강하다고 한다. 위의 프사를 봐도 앞니가 유난히 매끈해보이지 않는가 당시 갈갈이는 방송 첫회이후 바로 스타로 급부상했으며 바로 뒤이어 임혁필과 <그렇습니다>코너를, 박성호 김시덕과 <청년백서>를, 김시덕 이재훈과 <생활사투리> 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개그콘서트의 세대교체와 공개코미디의 새로운 황제 탄생을 알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갈갈이 삼형제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하면 마트에서 무우를 세로로 잘라 판매하기도 했으며 PC게임으로 갈갈이 삼형제 CD가 출시되기도했다.갈갈이 삼형제가 악당을 무찌르는 전형적인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그의 닉네임 '갈갈이' 덕분에 박준형과 세트로 개그를 하던 정종철, 이승환을 '갈갈이 삼형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승환은 개그맨을 그만둔지라 갈갈이 삼형제의 현역은 정종철과 박준형 둘만 남았다. 이승환 대신 오지헌이 이 둘과 함께 활동한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이 시절의 갈갈이 삼형제를 모르는 사람은 박준형, 정종철, 오지헌이 갈갈이 삼형제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박준형을 중심으로 대학로의 갈갈이홀 출신들을 모아 함께 개그를 한 사람들을 갈갈이 패밀리라고 한다. 박준형은 본래 박승대와 함께 스마일매니아 소속이었으나 박승대와의 마찰로 갈갈이 패밀리로 독립했다. 현재 갈갈이 패밀리는 단순한 그룹이 아니라 매니지먼트 회사로 성장했고, 갈갈이팸은 대한민국 개그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 활동하는 개그맨들을 두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갈갈이패밀리와 갈갈이패밀리가 아닌 사람으로. 김병만, 이수근, 정형돈 등 우리가 알만한 개그맨들은 거의 갈갈이 패밀리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고 하며 무림남녀의 김민정은 갈갈이 패밀리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지 못해 자신감이 꺾여나갔을 정도로 갈갈이 세력의 지분이 컸다고 한다. 여담으로 결혼과 함께 개그우먼 김지혜는 갈갈이 패밀리와 종신계약을 맺었다.

 

2003년도 갈갈이 개그가 한창 물올랐을때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당시에도 단일 프로그램의 몇 개 코너를 히트 시켰다고 해서, 잘 나가는 MC들 이상의 영향력을 얻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순수 개그맨으로서 대상을 수상한 유일한 사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점점 커져만가는 박준형사단에 입지의 영향을 받게된 스타밸리 기획사는 SBS와 딜을 하게되고 그 당시 개그콘서트의 주축이었던 심현섭, 황마담, 강성범, 이태식, 이병진,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를 이적시킨다. 1주일만에 코너의 반이상을 채워넣어야하는 개그콘서트의 커다란 방송 중단 위기가 왔다. 그러자 박준형은 개그콘서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우비 삼남매를 런칭하고, 극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던 이정수의 <우격다짐>을 추천한다. 또한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정형돈, 김기수, 김다래, 권진영 등이 등용된다. 그는 항상 방송의 중심을 개그콘서트에 두었다. 당시 박준형은 갈갈이 삼형제와 박준형의 생활사투리, 그렇습니다, 청년백서,우비 삼남매, 그리고 수상 이후 사랑의 가족, 패션 7080, 골목대장 마빡이 등등.. 온갖 개그가 폭풍처럼 히트치면서 당시 쟁쟁한 연예인 MC들을 눌러버릴 정도였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도 박준형의 청년 스토리를 다룬 적이 있을 정도.

 

사실 후기에는 자꾸 후배들의 개그에 묻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져서 욕도 많이 먹었다. 코너를 4개씩이나 했으니 다 짜기 힘들었을 듯. 심지어 본인이 대놓고 '묻어가는 것 맞습니다'라고 해서 현재 이미지는 묻어가는 개그맨으로 굳혀졌다. 인맥과 인성이 좋아서 묻어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는 듯(...)본인의 능력으로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캐릭터들의 감초 역할을 하거나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 더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선도부 이정수, 옥동자 정종철, 아이스맨 이덕재 등에 이어서 자신의 마지막 캐릭터인 황장군 때는 선생님 박미선과 같이 합을 맞춘 것도 모자라 조세호까지 자신의 숨겨진 아들로 등장시켰는데 오히려 조세호가 더 주목받는 형국이 되기도 했다. 물론, 봉숭아 학당에서도 앞니를 이용한 퍼포먼스는 여전했다

 

봉숭아 학당에서 개인 최다인 9개의 캐릭터를 선보였지만 별 특성 없는 무미건조한 캐릭터들이어서 그다지 재미를 못 봤다. 맨 처음 마이콜 기믹으로 시작했고, 호나우지뉴 흉내를 내거나 황장군을 마지막으로 선보였지만 본인의 한계를 절감했는지 나중에는 아예 웃길 필요가 없는 선생님으로 등장, 오히려 이 때 "들어가! 이 자식아!"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가 봉숭아학당 또한 최고의 전성기였다.

 

코너를 만들어내는 기획력은 당연히 그가 만들어낸 대박 코너의 숫자가 말해주듯 역대 최고 수준이고 대한민국 모든 개그맨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이디어 뱅크다. 박준형이 한 모든 코너는 모두 본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한창 전성기 때는 개그콘서트의 모든 코너를 박준형이 짠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아니었지만.

 

코미디계의 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는 전유성은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 라고 불린다는 얘기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연기력이 부족해 그렇게 되기는 힘들고 아마 박준형이 더 경험을 쌓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 말했다.

 

마빡이라는 희대의 히트 코너도 박준형의 아이디어로 1999년에 이미 대학로 극장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코너 이름이 <건들건들 건달이> 였다고.....코너 자체가 7년이 지나 빛을 본 케이스.

 

또한 소위 판을 깔아주는 능력에 있어서도 역대 개그콘서트 출연 개그맨 중에서 당연 탑 수준이다. 그가 히트시킨 코너들을 보면 대부분의 코너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지는 부분은 캐릭터가 만들어진 다른 개그맨들의 몫이지만 거기까지 만들어가는 박준형의 센스는 탁월한 장인의 수준. 목소리의 변화와 강세 조절, 템포 조절과 제스처로 시청자들의 집중도를 높이고 그걸 계속 유지하면서 코너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강점이다. 갈갈이 캐릭터로 초대박을 쳤던 갈갈이 삼형제에서도 관객들을 들었다놨다하면서 소위 갖고 논다는 표현이 생각날만큼 내공이 대단하다. 때때로 애드리브도 발휘되는 능숙한 코너 진행을 보면 과연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대상을 탄 것이 허투루 탄 게 아니구나하는 걸 알 수 있다.

 

2008년 4월에 정종철과 함께 MBC 개그야로 이적했다. 그 당시 정종철이 개그콘서트 피디와 심한 불화를 겪게 되고 3개월간 출연정지를 당하면서 개그콘서트에 나갈 수가 없게 되고 마침 MBC에서 섭외가 오자 이적을 결심하고 박준형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개그맨이 방송사를 옮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대외적으로 배신으로 보이기에 박준형 또한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약자인 동생 옥동자를 선택한 셈이다.

 

그 덕분에 박준형은 잘하고 있던 여타 프로그램과 라디오 박준형의 FM인기가요에서도 하차를 한다. 결론적으로는 잃은 게 많은 이적이었다.

 

그 일 이후 점점 후배 개그맨들의 이적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갔다. 어찌 보면 방송국 이적에서도 선구자인 셈이다. 덕분에 개그콘서트 팬들한테 두고두고 까인 흑역사도 있다. 개그야에서 하고 있는 코너도 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개그야 활동에서 그나마 기억하는 건 다단계장사를 컨셉으로 한 《파라요》가 있다. 피폭자인 최국에게 어처구니 없는 조건으로 거래를 제시하면 최국이 "예?!"라며 놀라고 그러면 박준형이 "'예'라고 하셨습니다."(...)하며 서류에 문답무용으로 서명하는 패턴의 개그.

 

박준형이 이사온 뒤로 개그야는 웃찾사 시청률은 이기고 있었지만 결국 종영되었고, 박준형은 후속 프로인 하땅사에 선배개그맨인 컬투와 함께 출연했지만 이 프로도 결국 종영되었다. 하땅사의 코너인 "나 이런 사람이야"에서 임요환을 소재로 개그를 하기도 했다. tvN에서 촬영된 임요환의 다큐에서도 임요환의 숙소에 놀러와서 같이 게임을 즐기는 걸 보면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듯하다.

 

이 당시 봉숭아 학당의 곤잘레스가 컨셉대로 코너 중간에 광고를 했는데, 내용이 "헤이-곤잘레스 정종철폰~ 다른 통신사로 가면 안 터진다리아~" 라고 정종철을 디스하더니, 곧이어 "헤이 곤잘레스 박준형폰~ 정종철폰이 있어야 터진다 리아~"라고 박준형과 정종철을 한 큐에 디스했다. 동기 박성호도 사마귀 유치원에서 "개그콘서트만을 사랑하는 박준형-"이라고 깠다. 본인도 웃찾사로 외도했었으면서 아이러니하게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가 웃찾사로 갔다가 죽을 쑤고 개그콘서트으로 돌아올 때 앞장서서 그들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박준형이었다.

 

개그콘서트 10주년에 출연, "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무를 갈고 가겠습니다."라고 하긴 했는데, 20주년 즈음 1000회 특집 때 또 갈았다. 12년이 지나서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1000회 때 활약이 돋보였는지 다시금 개그콘서트에 복귀하게 된다.

 

현재 공식적인 활동은 MBC 표준FM에서 매일 오후 2시에 하는 "박준형, 정경미의 2시만세" 진행. 의외로 라디오에서는 잘 터트리는 편이다. 정경미와의 찰떡호흡으로 진행한지 7년차가 넘어서면서 MBC 라디오에서 동시간대 가장 장수 DJ로 자리잡았다. 청취율도 꽤 높아 전체 라디오 순위에서 늘 탑5 정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코너 중에는 아예 <나 그대에게 모두 갈아드리리>라는 것도 있을 정도 이 코너에서는 항상 박준형이 청취자를 위한 힌트를 주는데, 파리나무 십자가 힌트라든가 G선상의 아리아 힌트, 지나가는 자동차 힌트같은 별 기괴한 힌트를 준다.또한 박준형이 개드립을 엄청많이 날리는데 정경미가 무시하고 재빠르게 지나가곤한다.

 

라디오 활동 외에는 주로 대학로에서 자신만의 극단 갈갈이홀을 운영하면서 신진양성에 힘쓰고 있다. 다만 최국의 증언에 따르면 극장은 이제 문닫은 모양이다.

 

2019년 8월 7일, 무려 12년 만에 공식적으로 개그콘서트에 복귀가 확정되었다. 이미 녹화를 끝냈고, 방송은 2019년 8월 11일이다. 그것도 레전드 코너라 일컬어지는 박준형의 생활사투리 2019 버전을 들고 왔다. 코너명은 2019 생활사투리.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12년 전에는 제가 막내 였는데 이번 녹화 때 가니 모르는 후배들이 더 많았다. 세월이 느껴지면서 시조새가 된 기분이었다"며 웃었다. 그 외에도 전설에 먹칠하다 불후의 분장 및 2분 드라마, 바바바 브라더스 코너 등도 맡았다.

 

2019년 12월 21일에 진행된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지혜 프로필 나이 신체 배우자 자녀 학력 데뷔 


출생

1979년 5월 25일 (42세)

신체

168cm, 57kg, O형, 245mm

배우자

박준형(2005년 - 현재)

자녀

장녀 박주니(2007년 3월 29일생)

차녀 박혜이(2009년 4월 24일생)

학력

서울면일초등학교 (졸업)

면목중학교 (졸업)

혜원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과 / 전문학사)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데뷔

1999년 KBS 14기 공채 개그맨


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2. 활동 내역


 

1999년 KBS 공채 14기로 데뷔했다. 동기인 김영철, 김대희 등과 함께 개그콘서트의 원년 막내 멤버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방송에서 기믹으로 많이 언급한 탓에 지금은 성형미인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데뷔 때부터 개콘을 대표하는 미녀 개그우먼이었다.

 

개콘 시절 김지혜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캐릭터는 봉숭아학당의 하니. 빈유 기믹으로 '가슴이! 가슴이! OO예요'가 유행어였다. 또 '장마, 홍단'에서는 엄마 역할을 맡았다. 최국과 조세호가 김지혜의 딸로(...) 나왔다.

 

박준형과는 3년 연애 끝에 2005년 7월에 결혼했다. 2004년쯤부터 연애 사실이 공개됐기에 개콘에서도 두 사람의 연애를 종종 개그 소재로 써먹었다. 당시 김병만의 역사스페셜에서 여자들 목욕하는 걸 훔쳐보는 박준형에게 김병만이 '이러는 거 지혜가 아냐?'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결혼 후 코미디와 예능 활동은 거의 접다시피 했지만 여성 의류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해 사업가로 성공했고 특히 홈쇼핑 쪽에서는 2007년부터 자리 잡아 꾸준히 활동해 왔다. 가끔씩 개그콘서트 무대에도 섰는데 2006년 박준형이 출연하던 패션 7080에 임신한 몸으로 깜짝 출연해 "딸 양육비 벌러 나왔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2007년 400회 특집에는 오랜만에 하니로 나와 "애 낳으니 가슴이 커졌다"고 했다.

 

2010년 경 양악수술을 받았다. 임혁필에게 소개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2012년 6월 20일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양악수술을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는 발언을 하여 미용 목적의 무분별한 수술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슬하에 두 딸이 있다. 첫째 박주니가 2007년생, 둘째 박혜이는 2009년생이다. 둘 다 아빠를 더 닮았다. 둘 다 부모님의 영향인지 뛰어난 예능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개그맨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확고한 의사를 밝혔다.

 

현재는 남편과 함께 1호가 될 순 없어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박준형 김지혜 부부 사는 집


강남 서초구 반포동 반포 자이

반포자이아파트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반포로 270

 

15년차 정도 되었지만,

많은 이들에겐 여전히 꿈의 아파트로 불리는 곳이다.

평수는 어림잡아 90평대로 추정된다.

아래 첨부한 사진들을 보면

왜 '반포 + 자이'가 아파트계

끝판왕인지 짐작게 된다.

자, 시세부터 보자.

매매가는 52억 정도

관리비는 50 만원대다.


실내는 대략 이러하다.

 


 


 


 

여기에 더해

박준형에 대한

17년 전 기사를 보면,

그가 부동산 투자와 재테크에

일찍이 관심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열심히 벌고 악착같이 모으며

치열하게 공부해서는

열정적으로 투자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