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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Gucci

기업 유형

자회사

설립 연도

1921년 (100주년)

설립자

구찌오 구찌 (Guccio Gucci)

CEO

마르코 비자리 (Marco Bizzarri)

수석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구찌 가옥 플래그십 스토어

 

 

1. 개요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2. 상세


 

현재 케링 그룹 소속의 자회사이다. 패션 하우스로서 구찌는 그랑 쿠튀리에의 자격으로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이며 동시에 레디 투 웨어 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유명한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다. 톰 포드의 구찌 시절엔 가장 핫한 남성복 라인으로 인기를 받았고 이후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3대 명품 에 밀린 콩라인 취급받으며 약간 주춤했으나, 2015년 이후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등장으로 20, 30대 MZ세대에서 가장 핫한 명품으로 재부상했다. 2019년 96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 루이비통에 이어 업계 2위의 매출을 달리는 브랜드이다. 2020년 국내 명품 매출로는 루이비통, 샤넬 다음 수준으로 3~4위로 보고 있다.

 

루이비통, 펜디, 고야드 등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반복되는 모노그램이 아시아에서 특히나 인기가 있는 브랜드이다.


3. 역사


3.1. 초기


구찌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피렌체에서 설립하며 시작되었다. 1897년 런던의 최고급 호텔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던 구찌오는 상류층 손님들의 고급 가방에서 영감을 얻고 1902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21년 피렌체에 자신의 이름을 딴 가죽 용품과 작은 가방을 취급하는 첫번째 구찌 매장을 오픈하였다. 1930년대에는 상품라인을 더욱 확장하여 다양화 시켰으며 구찌의 주 고객층인 귀족들의 승마 용품에 대한 수요로 인해 독특한 홀스빗 아이콘을 개발하게 된다. 1938년에는 이탈리아 쇼핑 중심지 로마 콘도티 거리에 매장을 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국이던 이탈리아의 자재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많은 가죽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첫째 아들 알도 구찌는 일본에서 수입 가능하던 대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를 계기로 구찌를 상징하는 여러 제품 중 최초의 제품이 된 "대나무 백"을 만들게 된다. 대나무 백은 당시 귀족과 유명인사의 애장품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애장품으로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가방 외에도 시계, 벨트, 손잡이 등 여러 곳에서 활용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51년에는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은 그린, 레드, 그린으로 이루어진 삼선 마크 "더 웹"을 개발했다. 오늘날에도 구찌의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되고 있는 디자인으로 가방, 신발, 벨트, 악세사리 등 온갖 곳에서 활용되는 구찌를 상징하는 디자인 중 하나이다. 1953년 창업주 구찌오 구찌가 사망하고 첫째 아들 알도 구찌와 셋째 아들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눠 가졌다. 알도 구찌는 특유의 감각으로 구찌의 성공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아버지 구찌오 구찌에서 영감을 얻은 맞물린 GG 로고를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 현재의 구찌 로고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후 런던, 파리 및 베벌리 힐스에 매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에는 아시아 진출도 본격화해 도쿄와 홍콩에 매장을 오픈하였다. 1977년, 60년대에 오픈했던 베비버리 힐스 매장을 구찌 미술관 으로 전환되었다.

 

1981년 피렌체에서 창사 이래 최초로 런웨이 패션쇼를 개최하였다. 1982년 구찌 가족 경영진들의 논의 끝에 로돌프 구찌가 디자인부터 생산, 공급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경영권을 가지도록 결정하였다. 1년 뒤 로돌프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 받으면서 브랜드가 풍비박산 나버렸다. 이유는 집안 싸움 때문이었는데 대표적으로 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는 데 알도 구찌의 아들 파울로 구찌는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하에 핸드백, 악세사리, 와인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라이선스 남발이 이어지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당연하게도 구찌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다. 가족 경영에도 위기가 불어닥쳤으며 회사 이미지와 더불어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구찌에 큰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1987년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3.2. 오늘날


1990년대 초반 투자회사 Investcorp가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하였다. 1994년 가족 경영 체제를 탈피한 후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호사 출신 도미니코 드 솔레가 구찌의 CEO로 임명되었다. 톰 포드는 로고, 홀스빗 등 구찌의 전통적인 유산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큰 성공을 이뤘다. 새로워진 구찌는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1998년 유럽언론협회의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기도 한다. 톰 포드 이후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매장, 광고, 제품 등 회사 이미지 전체를 전두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위가 유행하게 되었다. 한편, 1995년 마우리치오 구찌가 밀라노의 자택 앞에서 전처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의 권총에 피살되었다. 1999년 PPR(Pinault-Printemps-Redoute)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되었다. 2004년 톰 포드는 재계약 과정에서 도미니코 드 솔레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구찌를 떠나게 되었고 프리다 지아니니가 2006년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프리다 역시 구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4년간 46% 매출 신장을 기록하였으며, 2007년 닐슨의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명품 브랜드에 선정되었다.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가 싶더니 2009년 새로운 CEO 파트리치오 디마르코가 임명된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점차 뒷쳐져가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2014년 프리다 지아니니와 파트리치오 디마르코 구찌를 이끌던 2명의 수장은 계약이 종료되었다.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구찌는 2015년 전환점의 해를 맞는다. 새로운 수장 자리에는 마르코 비자리와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영입되었고 구찌의 구원투수가 되었다. 비자리는 스텔라 맥카트니와 보테가 베네타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업계에서 이미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무명이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임명은 파격 인사였다. 미켈레는 구찌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일하긴 했지만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대다수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구찌의 부진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미켈레의 새로운 컬렉션이 발표된 이후 업계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기존의 올드하고 식상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신세대적인 구찌를 내놓았다. 다소 매너리즘에 빠졌던 브랜드 전반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바꾸면서 스트릿, 힙합 패션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며 가장 핫한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올라섰다. SNS를 통해 캐주얼하면서도 젊은 감성의 독특한 디자인이 입소문을 타며 이후로도 여타 패션 하우스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바뀌게 된 원인 젊은층의 폭발적인 입소문에 2015년 매출은 전년대비 15%, 2016년에는 17% 급등하였다. 실제로 2019년 수익의 60%가 30세 이하 고객층에서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루이비통, 샤넬과 같이 여성들이 주로 찾았었지만 남성들의 구매욕을 이끈 지갑, 상의, 바지 등 힙한 스타일의 디자인이 시즌별로 나와 남성 층을 많이 유입시킨 것도 좋은 요인 중 하나이다. 2017년에는 에르메스, 2018년에는 샤넬의 매출을 제치며 단숨에 업계 2위의 명품 브랜드로 올라섰다. 1위는 루이비통

 

영국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2020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2위에 올랐다. 루이비통, 샤넬, 까르띠에, 에르메스 등등을 제치며 패션잡화 브랜드 중에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4. 컬렉션


 

Gucci Aria | F/W 2021-2022 컬렉션

 


4.1. 가방


 

4.1.1. 마틀라세 백


마틀라세 숄더 백

 

마틀라세 숄더 백

구찌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가방 중 하나이다. 실제로 거리를 나가보면 구찌 가방을 들고다니는 여성중 이 가방이 꽤 많이 보인다. 가격은 가장 흔한 스몰 사이즈 기준으로 272만 원이다.


4.1.2. 디오니소스 백


디오니소스 숄더 백

 

디오니소스 숄더 백

마틀라세 숄더 백과 함께 많은 인기를 받은 가방이다. 가격은 262만 원이다.


4.1.3. 디스코 백


구찌 디스코백

 

구찌 디스코백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이지만 나쁘지 않은 실용성과 무난한 디자인으로 이 가방 역시 꽤나 흔하게 보이는 구찌 제품이다. 가격은 153만 원이다.


4.1.4. 더 재키 1961 백


구찌 더 재키 1961 백

 

구찌 더 재키 1961 백

1961년 출시된 가방으로 1960-70년대 구찌를 상징하는 가방이다. 당시 미국 영부인이던 재키 케네디 여사가 가장 즐겨들었던 핸드백으로, 2020년에 리뉴얼 출시되었다. 가격은 미니 사이즈 227만원, 스몰 사이즈 257만원, 미디엄 사이즈 303만원이다.


4.1.5. 다이애나 백


구찌 다이애나백

 

구찌 다이애나백

2021년 출시된 가방으로 구찌에서 가장 비싼 가격대의 라인으로 자리잡았다. 뱀부 핸들의 토트백은 구찌에서 1991년 가장 먼저 선보였는데, 알레산드로 미켈레에 의해 현대적인 감성으로 다시 해석되서 출시된 가방으로 구찌에서는 꽤나 상징성 있는 가방중 하나이다. 가격은 미니 사이즈(가로 20cm) 370만원, 스몰 사이즈(가로 27cm) 450만원, 미디엄 사이즈(가로 35cm) 540만원이다.


4.1.6. 파우치

 

구찌의 파우치도 인기가 많다. 가격은 100만 원 전후이다.


4.2. 지갑


구찌 반지갑

 

구찌 반지갑

남성 지갑이 특히 인기가 있는 브랜드이다. 위 사진속 제품인 구찌 패턴에 뱀이나 벌, 호랑이가 그려진 반지갑이 인기가 많은데 가격은 52만 원이다.


4.3. 신발


구찌 에이스 스니커즈

 

구찌 에이스 스니커즈

2017년 발매된 이후 구찌의 간판 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며 웹 라인이 기본 디자인이다. 기본 디자인에 다양한 동물, 식물, 문양등을 더해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출시되었다.


5. 주요 디자인


구찌 더블G

 

구찌 더블G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이니셜에서 따왔으며 194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구찌 웹라인

 

구찌 웹라인

초록색과 빨간색의 선을 이용한 디자인.

뱀부백

 

뱀부백

위 사진처럼 대나무를 이용한 손잡이이다.

재키백

 

재키백

 

원래는 호보백 이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인 제키 케네디가 애용하며 재키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J백이라고도 불린다.

 

말굽 모양 2개를 이어놓은 것 같은 디자인으로 Gucci의 거의 모든 액세서리에 사용되는 디자인 이다. 최근에는 주로 로퍼같이 끈이 없는 구두 장식에 많이 쓰인다.

실비

 

실비

전통적인 초록색 빨간색 초록색 삼선 웹라인의 뒤를 잇는 파란색 빨간색 흰색 조합의 삼선으로 미켈레 이후 새로운 구찌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마틀라세

 

마틀라세

역시 미켈레 이후 새로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퀼트처리된 부드러운 가죽 마몽라인의 상징인 로고가 인상적이다. 기존의 하나가 뒤집어진 더블 G 로고와 달리 뒤집지 않고 겹친 두 개의 G 로고 또한 미켈레의 작품이다.


6. 국내매장


3대명품 보다는 비교적 입점 기준이 낮긴 하지만, 역시 아무곳에나 매장을 내주지는 않는다. 대형 백화점이나 광역시에 입점되며, 꽤 넓은 매장 면적을 차지하는 브랜드이다. 일례로 신세계 본점, 신세계 강남점, 신세계 센텀시티,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는 모두 여성, 남성 매장이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고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각각 잡화, 여성, 남성 매장으로 총 3개의 매장이 입점해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1998년 청담동 명품거리에 문을 연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가 유일했으나 주요 명품 브랜드에서는 최초로 국내 두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구찌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2021년 5월 29일 한남동에 오픈하였다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한남동 구찌 가옥 플래그십 스토어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점, 부산본점, 인천터미널점, 광복점, 센텀시티점, 대구점, 광주점, 수원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센텀시티점, 대구신세계, 광주신세계, 경기점, 의정부점, 타임스퀘어점, 스타필드 하남, 대전 엑스포점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무역센터점, 더현대 서울, 판교점, 목동점, 대구점, 킨텍스점, 울산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WEST, 타임월드, 광교점)

아울렛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 여주점,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김포점,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동부산점)

 

알레산드로 미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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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미켈레 나이 학력 경력

출생

1972년 11월 25일, 로마 몬테 사크로

학력

Academy of Costume & Fashion in Rome

경력

2015년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4년 리차드 지노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 개요

최근 디자인

2021 구찌 리조트 컬렉션

 

2021 구찌 리조트 컬렉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2015년 1월, 자신이 2002년부터 일해온 이탈리아의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어 구찌의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책임지고 있다.


2. 생애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 외곽에 위치한 몬테 사크로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로마의 공항인 알리탈리아에서 기술자로 일하셨고, 어머니는 영화감독의 어시스턴트로 일하셨다.

 

1990년대 초,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Academy of Costume & Fashion in Rome에서 패션 디자인에 관한 공부를 완료했고, 그곳에서 연극 의상과 패션 의복 모두를 디자인하는 법을 배웠다.


2.1. 커리어


1994년,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를 떠나 볼로냐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니트 회사인 Le Copains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3년 후, 그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 칼 라거펠트와 함께 럭셔리 하우스인 펜디에 합류했다. 그는 그곳에서 프리다 지아니니와 함께 일했으며, 이후 브랜드의 가죽 제품을 담당하는 수석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임명되었다.

 

2002년, 1994년부터 2004년까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디자인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를 런던에 위치한 구찌의 소재 디자인 사무실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미켈레는 원래 구찌의 핸드백 디자인을 담당하다가, 2006년에는 구찌 가죽 제품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되었고, 2011년에는 2005년부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소시에이트로 승진하였다. 2013년 6월, 구찌가 인수한 피렌체의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도 했었다.


2.2.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4년, 당시 구찌의 본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와 그녀의 연인이자 구찌의 CEO였던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가 함께 매출 부진을 이유로 회사를 떠날 계획을 하자, 알레산드로 미켈레 자신도 12년 동안 일했던 구찌를 떠날 예정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공석이 되었고 2015년 1월에는 마르코 비자리가 새로운 구찌의 CEO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르코 비자리가 미켈레에게 차 한잔하며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고 당시에는 이미 구찌를 떠난 상태였던 미켈레가 거리낌 없이 마르코 비자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미켈레는 마르코 비자리에게 전화 한 통을 받게 되는데 이 전화 통화 내용 중 일부가 "프리다 지아니니가 제작하다 말았던 남성복 컬렉션을 재구성하여 일주일 안에 패션쇼를 준비할 수 있겠는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미켈레에게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넘겨주려 한 것. 미켈레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새로운 구찌: 비적합주의자, 낭만주의자, 지성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틀 후, 케링 그룹은 매출 하락세였던 구찌의 제품들을 재창조할 목적으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정식으로 임명하였다.

 

이처럼 미켈레는 '무명 디자이너'라는 대중들의 편견과 근심 걱정들을 떨쳐내버리며 성공적으로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데뷔를 하게 된다. 불과 일주일 만에 의상의 디테일들을 살려내었고 관객들까지 매료시키며 여유롭게 쇼를 장악해 나갔다. 마르코 비자리의 안목 덕분에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구찌는 다시 한번 위상을 회복하며 매출 또한 상승하게 되었다.

 

한 달 후, 미켈레는 첫 여성복 컬렉션 쇼에서 "소박하고 지적이며 중성적인 느낌"을 표현해내었다. 그는 더블 G 로고와 같은 구찌의 클래식 제품들을 다시 선보이며 디오니소스 핸드백과 같은 상징적인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이전에 톰 포드가 선보였던 "섹시한 느낌"이 강했던 구찌의 제품들에서 벗어나 남성복 컬렉션을 "여성스러움은 더욱 남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여성화 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My Body, My Choice"라는 슬로건과 함께 옷에 수놓은 자궁 모양 디자인, 그리고 "22.05.1978"와 같은 날짜들을 사용하며 구찌 자체를 포스트젠더리즘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변모시켰다.

 

또한, 미켈레는 구찌의 디자인에 극적인 르네상스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 특징이며, 로마에 위치한 구찌 디자인 본사의 모더니즘 가구들을 골동품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컬렉션 발표 장소는 매번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들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도 미켈레의 특징이다.

 

2019년에 들어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의 메이크업 컬렉션을 다시 부활시켰고, 구찌는 그가 디자인한 최초의 고급 주얼리 컬렉션을 출시했다.


3. 수상


2017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2017년 하입비스트 선정 올해의 인물 HB100

2016년 GQ 올해의 남자 최우수 디자이너상

2016년 British Council Fashion Awards 올해의 국제 액세서리 디자이너상

2016년 CFDA 어워드

2016년 British Council Fashion Awards 올해의 국제 패션 디자이너상\


4. 여담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아버지도 아들을 미술관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다녔던 열렬한 예술애호가였다. 그의 부모님은 어린 나이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을 표출했던 아들을 격려해주었다.

미켈레는 어려서부터 항상 긴 머리를 고집해왔다.

10대 때, 영국 잡지를 읽기 시작했고 런던의 포스트 펑크와 뉴 로맨틱 스트리트 스타일을 동경해왔다고 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옷들이 역사적 맥락 없이는 무의미하다는 점을 고려해 자기 자신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기보다는 '의류의 역사학자'라고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