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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롯데가 가계도 (롯데, 농심, 푸르밀,롯데관광 )신춘호 신선호 신준호 신동원 신동윤 신동익 신동환 신정희

 

 

 

 

 

롯데 초대 회장 신격호 젊은 시절

 

 

중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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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격호 회장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기업인.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출신으로, 본관은 영산 신씨. 호는 상전(象殿), 일본 이름은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홀수 달에는 한국에서,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1세대 재벌 총수 중에서는 정주영과 함께 손꼽히는 자수성가 재벌이기도 하다.

(1세대 재벌 중에서는 지주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병철, 조중훈도 있고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재벌로 키운 사람으로는 최종건, 김종희가 있다. 조홍제, 구인회, 허만정 역시 만석꾼 자손으로 태어났다. 반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밑바닥부터 고생을 해가며 재벌의 위치까지 성장한 사례는 정주영과 신격호가 대표적이다.)

 


2.1. 출생과 일본으로


 

1921년 경상남도 울산군 삼동면 둔기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빈농인 신진수(辛鎭洙)의 5남5녀 중 맏이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5년 언양공립보통학교 (현 언양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정형편상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거들다가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울산농업보습학교에 진학했다. 1938년 졸업하면서 경남도립종축장의 기수보(技手補)로 취업했는데 주 업무는 양털깎기와 양돈 등이었고 박봉이었다.

 

부산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에 머물며 사업가의 꿈을 키우던 신격호는 1941년 부인 노순화와 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신영자를 비롯해 가족과 고향을 모두 뒤로 한 채 성공하겠다면서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도쿄에 도착해 방을 하나 빌려 자취하면서 우유 배달 일을 하며 와세다실업학교 고등부의 야간부 화공과에 적을 두고 학업을 이어갔다.

 

고학을 하며 어렵게 생활하던 중 1944년 기회가 찾아왔다. 성실함을 인정받아서 하나미츠(花光)라는 사람이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려주면서 공장을 해보라고 했다. 이 돈으로 전쟁통에 수요가 충분했던 커팅오일과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공장이 폭격을 당해서 완파되는 바람에 완전히 쫄딱 망했다. 다시 하나미츠에게 돈을 빌려서 다시 커팅오일 공장을 운영하는데 1년 반 뒤에 다시 미군의 폭격으로 망했다.

 

1945년 광복이 되었고, 하나미츠도 살길을 찾으라 위로를 하며 거액의 투자금을 포기한다. 진짜 자살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에까지 몰렸으나,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을 땐 죽더라도 자신에게 거금을 빌려준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일어섰다. 1946년엔 와세다실업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후 이번에는 세탁비누, 세숫비누, 포마드 크림 등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다행히도 장사는 상당히 잘 되었다. 솥단지 하나로 시작해 1년 반 만에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집 한채까지 선물했다. 신격호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하나미츠나 그런 그에게 빌린 돈을 갚고자 죽기살기로 노력해서 1년 반만에 갚고 집까지 선물해 주는 신격호나 대단한듯.

 

이후 신격호는 약간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유지류나 특수고무같은 물질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을 죄다 사다가 한 번씩 다 씹어보고 각각의 껌들에 한두 가지씩 존재하는 장점들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그런데 신격호가 이렇게 개발한 껌이 인기가 엄청 좋아서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격호의 연구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껌을 팔기로 했는데, 1948년 현 롯데그룹의 모체인 (주)롯데를 세웠다. 창립 시기 일본 정부가 불량식품 단속을 위해 제정한 '식품위생법'은 오히려 롯데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어 주었는데, 단속 당시 롯데껌이 타 업체보다 품질이 앞서서 공신력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1950년엔 신주쿠에 새 공장을 지었다.

 

당시 일본 껌 시장은 판껌 선두주자였던 '하리스'가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신격호는 주력 시장이던 풍선껌 외에 판껌 시장에도 진입해 1953년엔 하리스를 따라잡았고, 1960년대까지 미스롯데 선발대회(1953년)나 TV광고 같은 홍보매체를 적극 활용해 일본 껌 시장점유율을 70%까지 올렸다. 이렇게 승부를 결정짓게 한 계기는 미국 리글리와 천연 치클을 50:50 비율로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1962년에 스위스 초콜릿 장인 막스 브락크까지 스카우트한 후 초콜릿 개발에 착수해내 1964년 '가나초콜릿'을 선보였고, 1969년엔 캔디, 1972년 아이스크림까지 각각 손을 댔다. 더 나아가 롯데애드, 롯데부동산, 패밀리, 롯데리아 등 계열사 설립에도 힘을 기울였다.


2.2. 한국으로 오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교가 정상화되었다. 당시 경제개발을 위해 해외자본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던 때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일본에서 제과 사업을 일으켜 성공한 신격호 회장에게 정부가 외자도입법에 따라 지원을 해줄테니 고국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신 회장은 모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했고 1967년 4월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롯데제과'를 세웠다. 신격호 자신은 사장을 맡았고, 회장엔 유창순 전 경제부총리를 추대했다. 다음해 1968년에 두번째로 부산 거제동 출장소를 열어 사업을 확장했으며 롯데제과는 이미 일본에서 성공한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시 해태, 크라운, 오리온이 장악하고 있던 한국 제과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1970년에는 껌과 과자 포장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을 인수하여 '롯데알미늄㈜'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고만고만한 제과회사로 그칠 뻔 했던 롯데의 명운이 바뀌게 된 것은 엉뚱한 사건 때문이었다. 1970년 서울시의 대대적인 부정식품 단속 결과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었는데, 엉뚱하게도 이것이 롯데가 한국에서 급성장하여 재벌과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변변한 고급호텔이 없어 국빈들이 방한했을 때 묵을 만한 장소조차 마땅치 않았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국격을 위해서라도 서울에 고급호텔이 하나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상 고급호텔 사업은 수지가 맞지 않다고 여겨 기업들이 발벗고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때 롯데제과에서 쇳가루가 검출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구실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던 신격호 회장을 이용하여 호텔을 짓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1970년 11월 13일 정부는 롯데제과에 3개월 제조 정지 명령을 내렸고 같은 날 박정희 대통령은 도쿄에 머물고 있던 신격호 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서울에 호텔을 지어 호텔사업을 하면 롯데제과의 정지 처분을 해결해 주겠다고 제안이라고 쓰고 지시라고 읽는다했던 것이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맡고 있었던 손정목 교수는 이날을 '롯데재벌 탄생이 결정된 날'로 기록하고 있다.

 

롯데호텔 건립은 1973년부터 본격화되었다. 신 회장은 1973년 '호텔롯데'를 설립했고, 1974년 정부의 반도호텔 민영화 공개입찰에 롯데가 단독 입찰하여 낙찰받았다. 이후 김종필 국무총리와 양택식 서울시장이 나서서 롯데호텔 건설을 지원했다. 정부는 롯데호텔 부지 마련을 위해 정부 소유의 반도호텔과 국립중앙도서관을 신 회장에게 매각했다. 정부는 신 회장에게 국립중앙도서관을 헐값에 매각한 후 남산 어린이회관(현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건물)으로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신 회장에게 부동산취득세, 재산세, 소득세를 모두 면제해 주었다. 법적 근거는 외자도입법이었다. 신 회장이 일본에 거주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외자도입법에 근거하여 관련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하여 1979년에 '롯데호텔 서울'을 준공했다. 신 회장은 롯데호텔 건설 중에 롯데호텔 옆에 백화점을 짓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정부가 도심 과밀화 억제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하고 있던 때라 도심에 백화점 허가가 어려웠으나 외국인 투숙객을 위한 쇼핑 시설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허가를 받았고 이후 설계를 변경하여 당초 허가 때보다 훨씬 크게 지어 롯데호텔과 동시에 롯데쇼핑센터를 완공했다.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건립하면서 롯데는 제과업에서 유통업, 서비스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고 유통업을 통해 롯데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편 1970년의 제조 정지 위기를 무사히 넘긴 롯데제과는 이후 급격한 매출 성장을 이루었다. 일본에서 성공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70년대 중반에 제과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아울러 인수합병을 통해 식품업의 규모를 확장했다. 1974년 칠성한미음료(현 롯데칠성)를 인수했고 1977년엔 삼강산업(현 롯데푸드)을 인수하였으며 1978년 롯데유업까지 세워 종합 식품사업군을 구축시켰다.

 

한편 1973년에는 일본 파이오니아사와의 합작으로 롯데파이오니아를 세워 카세트, 오디오 등 음향 전자기기를 생산했다. 1980년 출시한 오디오 파이오니아는 큰 인기를 얻었다. 80~90년대 대한민국에서 오디오붐이 불면서 각 가정마다 고가 오디오를 1대씩 장만하는 것이 유행했는] 롯데 오디오는 인켈에 이은 국내 2위의 오디오 생산 업체였고 그 뒤를 태광, 아남 등이 이었다.

 

1978년 그룹회장으로 추대된 후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초창기 식음료사업군 중심에서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점차 바뀌었고, 1997년 차남 신동빈이 부회장이 되면서 2세 승계작업은 점차 속도를 더해갔으며, 무차입 경영을 고수해 외환위기 역시 비켜나갔다. 2007년엔 일본 (주)롯데를 '롯데홀딩스'로 출범시켜 기존 계열사들을 '투자법인'으로 만들어 사업부를 신 법인에 넘겼다. 2011년에는 신동빈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며 자신은 '총괄회장'으로 추대됐다. 2017년 6월 24일 오전 일본 롯데홀딩스는 도쿄 신주쿠 하쓰다이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한 인사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주)롯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창립한 지 약 70년 만에 롯데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명예회장직을 대신 받게 되었지만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나 다름없다.


2.3. 롯데판 왕자의 난


2015년 7월 28일 신격호는 일본 롯데홀딩스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되고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이 되었다

27일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 몰래 롯데가(家) 인사 여럿과 함께 일본에서 자신을 제외한 차남 신동빈 회장을 포함 여섯 명의 이사들을 해임하려고 했다가 이사회에서 제동을 건 것이다. 한마디로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고령의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고, 차남 신동빈 회장 체제를 무너뜨리려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실패한 것이 된다.

 

문제는 장남 신동주가 처음에 해임했던 인물들에 포함된,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쓰쿠다 다카유키가 예전에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점. 그런 쓰쿠다를 신격호+신동주가 다시 해임했다는 것은 신격호 회장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장남에게 설득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자들의 분석이 있다. 하여 차남 신동빈 측에서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는 것. 이 때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 대행 신동인 역시 신동주의 쿠데타에 가담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능함의 대명사이자 롯데 자이언츠 CCTV사건에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신동인이 드디어 짤릴 수 있다면서(…).

 

하지만 2015년 5월 22일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하여 건설보고를 받는 모습을 밀착취재한 기사들만 봐도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과 무리 없이 대화 했다고 하거나 건설에 대한 매우 상세한 사항을 물어보며 현장의 상황을 살폈기에 위의 신동주 쿠데타-신격호 노환설을 부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무엇보다도 신격호는 꾸준히 신동빈을 밀어주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끈 다 떨어진 신동주를 다시 당긴다는 건 아귀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신격호가 신동주를 이용하여 양국 회장급에 취임한 신동빈에게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권력의 운용과 책임에 있어서 무한대로 자유로운 상왕으로서의 포지션을 취하려고 했는데 신동빈의 갑작스러운 제스처에 당해 권력없는 태상황이 되어 버렸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본인은 1948년 회사 설립 이후 처음으로 일본롯데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이고 신동빈 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귀국 때 엄청난 취재진이 몰려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2015년 7월 30일 신동주 부회장이 일본롯데에 대해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고 그 골자가 신격호 회장의 복위(+ 신동주 부회장의 복위)라고 한다. 신동빈 회장은 펄펄 뛰는 중이라고. 또한 신동주 측에서 "아버지 신격호 역시 신동빈+쓰쿠다를 그만두게 했다"라며, 이와 관련한 신격호의 (일본어)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묘연해지고 있다. 신격호가 이전에 쓰쿠다에게 "잘 부탁한다"라고 한 것은 "(그만두고 나서도) 다른 데 가서 잘 하라"는 덕담이었다는 것(…). 기사 신동빈 쪽에서는 "롯데 경영 전반에 있어 아버님(신격호)의 의중이 중요하긴 하지만, 신동빈+쓰쿠다 해임 지시는 제대로 된 절차 없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따를 수 없다"며 맞서는 중. 신격호의 장녀 신영자는 신격호+신동주에 가세하는 양상. 하지만 2011년에 신동빈을 한국 롯데 회장에 임명해 놓고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등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보여 정말 신격호가 판단력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도 의심되었었다.

 

2015년 8월 2일 신동주 부회장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6월달에 롯데그룹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신동빈 회장을 추궁하던 중 격노하여 뺨을 때렸다고 한다.(...) 결국 8월 28일에 있던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측의 안건이 죄다 부결됨에 따라 1차 표결은 신동빈 측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2015년 10월 15일 둘째 아들 신동빈이 집무실에 CCTV를 설치하여 신격호 명예회장이 직원들의 감시에 놓이게 되자 즉각 철수를 요구하였고, 10월 16일 장남 신동주와 직원들이 집무실에 진입하여 신격호의 거처를 탈환(..)하였다. 이후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였는데 고령이라 귀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인터뷰도 아주 똑바로 하고 의사표시도 분명하게 하는 걸로 봐선 그간의 정신이상설은 모두 근거없는 헛소문임이 거의 확실해젔다. 롯데그룹의 언론플레이가 의심되는 상황. 이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장남 신동주에 대한 지지의사를 확고히 하였다.

 

2016년 2월 12일, 신동주는 신격호가 경영관 분쟁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동영상과 친필 서명이 들어간 일본어 문서를 공개했다. 일본말로 진행된 해당 인터뷰에서 신격호는 “당연히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신동빈을 롯데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내용도 남겼다. 문서는 2015년 12월 30일자 서명이 있었다.

 

하지만 2016년 3월과 6월에 두 차례에 걸친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또 다시 신동주 측의 안건은 죄다 부결되면서 신격호의 롯데그룹 자체의 장악력이 이제는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6월 29일, 신격호 회장이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기사

 

보도의 출처는 롯데그룹이 아닌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측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진행중인 롯데그룹의 각종 비리 의혹 문제에 자신들이 휘말릴 수 있음을 우려한 신격호 회장과 신동주 측이 각종 수사를 피해가기 위해 뒤늦게 기존의 주장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3부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꾸준히 말을 바꾸고 있는 것

 

2017년 6월 2일, 신격호는 대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인 판정을 최종적으로 받게 되면서 사실상 본인이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음이 확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7년 6월 24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이사직 재선임안이 통과되지 않음에 따라 결국 회사의 경영일선에서 모두 물러나고 말았다. 4차에 걸친 신동주 vs 신동빈의 싸움은 신동빈의 완승으로 끝나게 되었고, 신격호는 자신이 세운 기업의 경영 일선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1. 개요


대표사진 삭제

롯데그룹 신격호의 가족관계.

 

롯데가하면 일본인과 결혼하고, 한일혼혈 집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인과 결혼했거나, 한일혼혈인 사람은 하필이면 신격호 회장과 신격호의 직계 자손들 뿐이다.(신격호 회장은 다케모리 하츠코와 결혼했고 차남 신동빈 회장은 오고 마나미와 결혼했으며, 신격호의 손자이자, 신동빈의 장남 시게미츠 사토시는 한국 국적이 아니며, 사토 아야라는 일본인과 결혼했다.)

(참고로 신격호의 다른 자녀들 중 장녀 신영자는 한국인과 결혼했었고, 장남 신동주는 재미교포와 결혼했고, 차녀인 신유미는 일본인과 결혼했다. 4남매중 두 명이 일본인과 결혼했으며, 신동주까지 합하면 3명이 외국인과 결혼했다.)

다른 범롯데가 사람들은 다 한국인과 결혼했다.

 

 

영산 신씨 초당공파로, 신격호의 생가가 있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 집성촌이 있었다고 한다.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은 유독 남동생들이랑 사이가 안좋았는데 신철호 메론제과 사장,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사이가 안좋다. 그나마 유일하게 괜찮은 사이였던 동생은 셋째 동생인 신선호 산사스식품 사장이었는데 이쪽도 신격호 회장과 어느정도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롯데관광개발을 제외한 나머지 범롯데가 기업들은 전부 식품 사업을 하고 있거나 이를 주력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롯데그룹도 과거에는 식품사업이 중심이었지만 이후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석유화학산업이 롯데그룹의 주력사업이 된다)

(물론 현재 식품사업이 롯데의 주력사업은 아니지만 재계 5위의 자산총액 121조원인 대기업 롯데답게 롯데의 식품사업만 떼어 놓고 비교해도 롯데그룹의 식품사업 부문이 나머지 범롯데가 기업들의 규모를 합친 것보다 크다.(...))

 

 

범롯데가의 인물들은 외모적으로 한가지 큰 공통점이 있는데, 1세대인 신격호,신준호를 포함해서 코가 상당히 큰 편이다. 남자고, 여자고 할것 없이 콧대가 상당히 오똑하면서 콧등이 약간 솟은 매부리코 형상이다. 그리고 눈도 외커풀 형상이 많은데, 둘째부인인 시게모리 하즈코 슬하의 신동주와 신동빈만 쌍커풀이 있어 모계 유전인듯하다.

 


2. 가계도


신진곤 (1872~ 1944)

1남 신진걸 (1892 ~ 1941

1남 신병호 (1916 ~ 2005) 롯데제과 고문 / 妻 서인애

1녀 신영우 (1937 ~ )

2녀 신복남 (1940 ~ )

1남 신동인 (1946 ~ ) 롯데케미칼 고문

2남 신동립 (1949 ~ ) 前 호텔롯데 부사장

2남 신진수 (1900 ~ 1973) / 妻 김필순

신격호의 아버지. 신격호를 비롯하여 슬하 5남 5녀를 두었다.


2.1. 1남 신격호 (롯데그룹)


1남 신격호 (1921 ~ 2020) 롯데그룹 명예회장

/ 1妻 노순화 (1922 ~ 1951)

1녀 신영자 (1942 ~ ) 前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前夫 장오식 (1941 ~ ) 前 선학알미늄 회장

1남 장재영 (1968 ~ ) 유니엘 대표

1녀 장혜선 (1969 ~ ) 前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장

2녀 장선윤 (1971 ~ ) 호텔롯데 전무 / 夫 양성욱 (1968 ~ ) 前 브이앤라이프 대표

3녀 장정안 (1973 ~ ) 前 롯데백화점 잡화팀장 / 夫 이승환 미국변호사

/ 2妻 다케모리 하츠코 (1927 ~ )

1남 신동주 (1954 ~ ) SDJ코퍼레이션 회장 / 妻 조은주 (1963 ~ )

1남 신정훈 (1993 ~ )

2남 신동빈 (1955 ~ ) 롯데그룹 회장 / 妻 오고 마나미 (1959 ~ )

1남 시게미츠 사토시 (1986 ~ ) 前 노무라 증권 사원 / 妻 사토 아야 (1984 ~ )

1남 시게미츠 (2018 ~ )

1녀 신규미 (1988 ~ )

2녀 신승은 (1992 ~ ) 산토리 사원/ 夫 이시이 도모히로 (1985 ~ ) TBS 테레비 아나운서

이시이 (2019 ~ )

/ 3妻 서미경 (1959 ~ ) 前 유원실업 감사

2녀 신유미 (1983 ~ ) 호텔롯데 고문

 


2.2. 2남 신철호


 

2남 신철호 (1923 ~ 1999) 동인 회장] / 妻 송수영 (1924 ~ )

1녀 신혜경 / 夫 조용완 법무법인 송백 변호사

2녀 신미진 / 夫 장태규 변호사

3녀 신혜승 / 夫 정경언 변호사

1남 신동림 / 妻 정승원 수원지방법원 판사

2남 신동훈 (1963 ~ ) 사이드웨이 파트너스 대표이사


2.3. 1녀 신소하


 

1녀 신소하 (1926 ~ 2005) / 夫 서병택

슬하 5남매를 뒀으며 언론에 보도된 자녀명은 아래와 같다.

1남 서정규

2녀 서정림


2.4. 2녀 신경애


2녀 신경애 / 夫 우동조

1남 우탁 휴네시스 사장


2.5. 3남 신춘호 (농심그룹)


3남 신춘호 (1930 ~ 2021) 농심그룹 회장 / 妻 김낙양 (1932 ~ )

1녀 신현주 (1955 ~ ) 농심기획 부회장 / 夫 박재준 (1952 ~ ) 前 조양상선 부회장

1녀 박혜성 (1981 ~ )

2녀 박혜정 (1985 ~ )

1남 신동원 (1958 ~ ) 농심그룹 회장 / 妻 민선영 (1961 ~ )

1녀 신수정 (1988 ~ )

2녀 신수현 (1991 ~ )

1남 신상렬 (1993 ~ )

2남 신동윤 (1958 ~ ) 율촌화학 부회장/ 妻 김희선 (1960 ~ )

1녀 신은선 (1988 ~ )

1남 신시열 (1990 ~ )

3남 신동익 (1960 ~ ) 메가마트 부회장 / 妻 노재경 (1963 ~ )

1남 신승렬 (1990 ~ )

1녀 신유정 (1993 ~ )

2녀 신윤경 (1968 ~ ) / 夫 서경배 (1963 ~ ) 아모레퍼시픽 회장

1녀 서민정 (1991 ~ )

2녀 서호정 (1996 ~ )

 


2.6. 3녀 신경숙


3녀 신경숙 / 夫 박성황 한일향료 사장

1남 박기택 국민대학교 나노전자물리학과 교수 / 妻 정형은


2.7. 4남 신선호 (산사스식품)


4남 신선호 (1934 ~ ) 산사스식품 사장 / 妻 심정자

1녀 신유방 (1964 ~ ) / 夫 이호진 (1962 ~ ) 前 태광그룹 회장

1남 이현준

1남 신동우 산사스식품 전무

2녀 신미나

2남 신동준

 


2.8. 4녀 신정숙


4녀 신정숙 (1937 ~ ) / 夫 최현열 (1934 ~ ) CY그룹 명예회장, 롯데그룹 총괄고문

1녀 최은영 (1962 ~ ) 유수홀딩스 회장 / 夫 조수호 (1954 ~ 2006) 한진해운 회장

1녀 조유경 (1986 ~ ) 유수홀딩스 상무

2녀 조유홍 (1988 ~ )

2녀 최은정 (1963 ~ ) / 夫 정몽익 (1962 ~ ) KCC글라스 대표이사 회장

1녀 정선우 (1991 ~ )

2녀 정수윤 (1995 ~ )

1남 정제선 (1998 ~ )


2.9. 5남 신준호 (푸르밀)


5남 신준호 (1941 ~ ) 푸르밀 회장/ 妻한일랑 (1947 ~ ) 푸르밀 감사

1남 신동학 (1968 ~ 2005)

2남 신동환 (1970 ~ ) 푸르밀 대표이사 / 妻 최윤숙

1남 신재열

2남 신찬열

1녀 신경아 (1972 ~ ) 푸르밀 이사 / 夫 윤상현 (1962 ~ ) 국회의원

1녀


2.10. 5녀 신정희 (롯데관광개발)


5녀 신정희 (1946 ~ ) 동화면세점 대표이사 사장 / 夫 김기병 (1938 ~ ) 롯데관광개발 회장

1남 김한성 (1969 ~ ) 동화면세점 부사장 / 妻 홍지현

2남 김한준 (1971 ~ ) 롯데관광개발 부사장


3. 범롯데가 기업 회장단


 

 

 


1. 개요


한국 이름 신동빈

일본 이름 시게미츠 아키오

대한민국의 기업인.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의 차남으로 현 롯데그룹 회장이다.

 

한국과 일본의 이중국적을 유지하다가 1996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즉 일본계 한국인이다.

 

다이세이 건설 부회장의 차녀인 일본인 여성 오고 마나미 여사와 결혼해서 슬하 1남 2녀를 두었다.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신동주보다는 조금 더 활발한 편에 가깝다고 한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을 가까이 보았던 롯데 출신 인사들의 말에 따르면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조용하고 나긋한 성격이라고 한다.

 

2017년 6월 24일 신격호가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남에 따라 한일 롯데그룹의 최고경영자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검찰에 의해 뇌물수수 혐의가 포착되어 불구속 기소되었고,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2018년 2월 13일 징역 2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 이후 항소심에서 뇌물 공여는 사실이지만 수뢰자의 강요가 있었다고 판단,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석방되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평산 신씨 35세손 항렬자(申東-)로 오인하기 쉬우나 롯데의 신씨는 영산 신씨이며 평산 신씨와는 성씨 한자가 다르다.(申 ↔ 辛)


2. 생애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마쳤다.

 

1981년 4월부터 1988년까지 일본 노무라 증권에서 일했고, 대부분의 기간에 런던지점에서 일했다. 19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의 상무로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롯데에서 공식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7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 후 1999년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2000년 롯데닷컴 대표이사, 2004년 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 및 롯데쇼핑 정책본부장을 각각 겸임했다. 2011년에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고 2014년부터 제20대 대한스키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일본 롯데는 신동주가, 한국 롯데는 신동빈이 사실상 운영을 하는 모양새로 진행되었고, 2008년에는 한국 롯데의 지배력이 강화되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고 막대한 투자를 한 것도 신동빈의 롯데 계열사 다지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선이 강했다.


2.1.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2015년 7월부터 형 신동주와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데, 판이 커져서 신격호 vs 신동빈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2015년 8월 3일 오후 2시 30분에 귀국하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부분의 질문에 밝힐 수 없다는 발언을 했으나, 롯데가 일본 기업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매출의 95%가 우리나라(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기업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발언을 바로 일본 언론에서 가져가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일본에서까지 국적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곧바로 신격호를 만났는데, 롯데그룹 측의 말에 따르면 분위기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반면, 신선호 산사스 사장이 밝힌 내용에 의하면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인사하자마자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신동주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싸대기를 맞았다고 한다.

 

귀국 당시 기자들의 집요한 취재 도중 청취용 마이크에 머리를 맞았다.

 

2015년 8월 11일 오전 11시에 또 다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론의 악화와 정부의 개혁 압박에 대처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런데 채널A가 그의 일본어투 한국어를 발음 그대로 자막으로 띄워주는 방송사고를 저질렀다. 당시 회견 마무리에 사과회견을 하면서 미안하다는 표현을 써서 약간의 논란이 되었다.

 

2015년 8월 17일 임시주주총회 결과 승리, 롯데그룹 회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15년 9월 17일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서 롯데그룹의 현황, 지분구조 등에 대해 진술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한민국 10대 재벌 총수 중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했다고 한다. 기사1 기사2 기사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신동빈 출석을 강하게 요구한 야당과 그것에 미온적이었던 여당 사이에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는데, 정작 국감 최대 거물이 출석을 하니 여야가 하나되어 덕담을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2015년 10월 초, 광윤사의 주식 지분을 신동주가 차지하면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롯데그룹에서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10월 16일에는 신격호 회장이 머무르는 롯데호텔 34층컨트롤 타워의 관할권 절반을 사실상 신동주에게 내주면서 현재는 양측이 공동관리하는 중이다.

 

2016년으로 넘어와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다시금 대결이 벌어졌는데, 신동주 측에서 상정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죄다 승리했다. 신동주 측이 광윤사 지분을 갖고 있어도 다른 주주들이 죄다 신동빈 우호지분인지라 승리할 껀덕지가 없었다. 특히 일본 경영진들과 종업원 지주회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 신동주 측의 패배 요인이다.

 

신동빈이 이처럼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실적 때문이다. 신동빈이 롯데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롯데그룹의 매출이 20조원에서 80조원으로 4배에 달하는 성장을 했기 때문. 보여준 실적이 매우 크기 때문에 주주들이 압도적으로 신동빈을 지지하는 것이다. 거기다 신격호의 건강에 대해서도 이상설이 꾸준히 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격호의 뜻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신동주 측의 의견은 주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리고 2017년 6월 24일에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역시 신동주 측에서 상정한 안건들이 죄다 부결되고, 오히려 아버지 신격호의 이사직을 재선임하지 않는 인사안이 통과되면서 명실상부한 롯데그룹의 최고경영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로써 4차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번 일로 형제 간의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결판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제는 창업주인 신격호를 회사 경영에서 배제시키는 안건이 통과될 정도로 확고하게 신동빈의 경영권을 인정해 준 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 개요


 

신동원 대한민국의 기업인. 농심그룹 창립자 신춘호 회장의 장남이자 2021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심그룹의 2대 회장


2. 생애


1958년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일고등학교를 졸업(7회 졸업생이다. 신춘호의 3남인 동생 신동익도 신일고를 졸업했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일고-고려대 동기생이다. 최태원은 물리학과, 신동익은 경영학과.)

후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놀면 뭐하느냐”는 아버지의 지적을 받고 공장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미리 받았으며 1979년 정식으로 입사하여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994년 임원 승진 후 전무이사를 2년간 지냈으며, 그 이후 부사장, 사장을 거쳐 2000년부터 농심그룹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2010년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겸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며 후계구도를 일찍 확정지었다.


3. 경영 평가


 

라면업계 1위라는 특성상 기존 브랜드를 바꾸거나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기존 부문 점유율을 수성하면서 짜왕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여러 성과를 냈다. 평소 연구개발 부문에 관심이 많은 편으로 짜왕 흥행의 주요소였던 굵은면발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하얀국물 열풍으로농심의 시장점유율이 소폭 떨어졌다가 회복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신동원은 시장변화 흐름에 편승하기보다 기존 빨간국물 제품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농심은 초반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하얀국물 열풍이 금방 사그라지며 오히려 그의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가 농심의 해외사업을 맡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특히 중국과 미국 등에서 매출이 늘어났다.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공장을 시작으로, 1997년 칭다오공장, 1999년 선양공장 등 중국사업과 2005년 미국공장 준공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최근 몇년간은 생수 사업을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이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생수 시장에서 점유율을 10%로 올리고 농심 라면의 중국 진출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생수시장인 중국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인 2000억 원을 투자해 2015년 10월 중국 얼다오바이허 지역에 백산수 신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롯데그룹과의 관계


 

아버지인 신춘호 회장은 선친에 대한 제사도 따로 지낼 정도로 큰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와는 아예 의절한 상태로 지냈고, 결국 두 형제는 이승에서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2020년 1월 큰아버지의 사망 당시 작은아버지인 신선호 산사스식품 사장이나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 다른 형제들은 신격호의 빈소를 찾았지만 신춘호는 영결식까지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형한테 끝까지 앙금이 남아있어서 참석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고, 그가 고령이여서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대신 신동원-신동윤 형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큰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장례기간동안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반면 아버지인 신춘호 회장이 별세하자 사촌형들인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조문 여부가 관심이었는데 경영 일정 때문에 일본에 있어서 장례식과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대신 신동빈 회장이 사실상 그룹의 2인자인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조화를 보내서 작은 아버지를 애도했으며 사촌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직접 빈소에 조문을 했다.

 

아버지인 신춘호 회장은 평생 신격호 회장 및 롯데그룹과의 연을 끊다시피 한 반면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은 사촌형인 신동주-신동빈 회장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또한 사촌형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촌동생인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 등 범 롯데가 2세 사촌형제들과는 친목모임을 만들어 허물없이 뭉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친목모임은 범 롯데가 1세대들과 달리 2세대들은 화목하게 지내자는 취지에서 꾸려졌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장기적으로 롯데그룹과의 협력관계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있다.

 


 

 

 

 


1. 개요


신준호 대한민국의 기업인.


2. 생애


1941년, 경상남도 울산군(現 울산광역시)에서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 넷째 남동생으로 태어났다. 미래통합당의 4선 국회의원인 윤상현의 장인이며, 신동주와 신동빈의 숙부다.

 

경남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삼강, 롯데물산, 롯데건설 등 롯데그룹 계열사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며 도쿄에 있던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한국롯데를 이끌었다.

 

큰 형인 신격호 회장과는 원래 가까운 사이였다. 신격호 회장이 가장 아끼는 동생 중 한 명이었으나 1996년에 부동산 관련 분쟁을 일으키면서(금융실명제의 여파로 부동산 차명소유가 추적대상이 되면서 롯데가의 여러 차명 부동산을 신격호가 명의전환으로 회수하려고 했는데, 당시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의 명의자였던 신준호가 반발하여 신격호와 신준호간 소송으로 발전했고, 결국 신준호가 패해 롯데제과 부지 + 그룹 부회장 겸 롯데건설 대표이사직을 모두 뺏겼다.)

사이가 멀어졌다. 결국 2007년에 롯데햄ㆍ우유에서 우유 사업을 떼어내 롯데우유로 분리되었으며 롯데우유가 푸르밀이 되면서(롯데그룹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쓰지 말도록 롯데우유 측의 상표권 사용에 제동을 걸었고 결국 롯데우유가 롯데라는 이름을 포기했다)

현재는 푸르밀 회장이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한국 롯데그룹의 부회장을 맡았고 1993년부터 1997년까지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도 각각 역임했다. 2012년부터는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야구 쪽에도 꽤 영향을 많이 미쳤는데 1975년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가 창단할 때 사장 겸 단장 역할을 직접 맡았고 KBO 리그 출범 원년인 1982년부터 1996년까지는 롯데 자이언츠의 구단주를 맡았다. 신준호가 구단주로 있을 당시에는 롯데가 각각 1984년과 1992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1992년에는 비야구인이자, 도선사 출신인 송정규를 롯데 자이언츠 단장에 파격임명한 것은 야구계에 유명한 이야기.

 

큰 형인 신격호 회장과는 사이가 안 좋지만 반대로 같은 처지인 셋째 형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과는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2018년 차남인 신동환 부사장이 대표이사가 되었고, 본인은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

 

2020년 1월 사이가 안좋았던 큰 형 신격호 회장이 별세하자 맨 먼저 빈소에 찾아와서 애도를 표하면서 두 형제의 갈등도 끝이 났다.

 

2021년 3월에는 셋째 형 신춘호 회장도 별세하면서 범롯데가의 생존하는 1세대 기업인은 신준호만 남았다.


 


1. 개요


대한민국의 여행사. 이름에 롯데를 달고 있지만 1982년 롯데그룹에서 계열분리되었다.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49(舊 세종로 211번지)에 위치해 있다. 동화면세점으로 알려진 그 빌딩. 아래층은 종로구 소속이고 위층은 중구 소속이라 행정구역이 3D로 나눠진 매우 특이한 건물로, 정식 명칭은 광화문빌딩 또는 감리교회관이다. 종로구/중구로 쪼개진 땅을 합쳐서 재개발했더니 자치구간 분쟁이 벌어져 이런 기상천외한 발상이 나와버렸다. 롯데관광 및 동화면세점은 아래층에 있으므로 종로구에 속한다.

 

이후 제주도에 38층짜리 제주드림타워를 중국 기업인 녹지 그룹과 손을 잡고 건설 중이며, 이에 맞춰 2020년 9월에 서울에서 제주로 본사 이전을 확정했다.


2. 상세


1971년 아진관광으로 설립된 후 1978년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관광에 인수되어 '롯데관광교통'으로 사명 변경했다. 1982년경 롯데관광과 함께 계열분리 후 1986 서울아시안게임 및 1988 서울올림픽 관광상품 판매 여행사로 지정됐고, 1991년 현 명칭으로 변경하고 200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이 회사는 신격호 롯데 회장의 막내 여동생의 남편인 김기병이 운영하는 회사이다. 1982년 이후 관계를 끊은 롯데측은 2007년 롯데JTB를 세우고 롯데관광개발에 대해 롯데마크를 쓰지 말라고 소송을 냈는데 롯데그룹측이 이겨서 롯데그룹 마크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롯데그룹에서는 롯데라는 이름까지 떼어내라고 압박 중이다. 롯데공업이랑 롯데 햄, 롯데우유랑 달리 계속 롯데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중이다.

 

2005년 공사화된 코레일과 합작해서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여행사도 만들었지만, 코레일과의 사이는 상당히 좋지 못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사실상 사업을 접은 삼성물산의 용산개발 지분을 롯데관광개발이 인계받으면서 용산개발 최대주주가 되었는데, 경기 침체로 인한 사업 변경을 주장하는 코레일과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롯데관광개발이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난항을 겪었다. 결국 코레일의 배짱에 손발 다 들고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지분을 코레일에 넘기고 사업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2013년 3월 13일 최종 부도를 맞음에 따라 롯데관광개발의 존속 여부도 상당히 불투명해졌으며, 주식가격 역시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3월 18일 용산개발 사업이 부도를 맞아버리자 롯데관광개발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상장폐지 및 기업 청산이 확실시되고 있다. 바로 당일인 3월 18일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을 받아버렸다. 감사보고서 전문

 

그러나 2013년 9월 상장폐지는 면했으며 주식거래도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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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는

롯데지주

식품회사는

롯데제과 | 롯데칠성음료 (음료BG · 주류BG) | 롯데푸드 | 롯데 네슬레 | 롯데아사히주류 | 롯데유통사업본부 | 롯데중앙연구소 | 롯데지알에스

유통회사는

롯데백화점 | 롯데마트 | 롯데슈퍼 | 코리아세븐 | 롯데하이마트 | 롯데홈쇼핑 | 롯데쇼핑 e커머스 | 롭스 | 롯데멤버스 | 롯데컬처웍스 (롯데시네마 · 롯데엔터테인먼트 · 샤롯데씨어터) | 에프알엘코리아 | 롯데상사 | 인천종합터미널

화학·건설·제조는

롯데케미칼 | 롯데정밀화학 | 롯데이네오스화학 | 롯데건설 | 롯데CM사업본부 | 롯데기공 | 롯데알미늄 | 롯데엠시시 | 캐논코리아 비즈니스 솔루션 | 케이피켐텍 | 한국후지필름

관광·서비스·금융는

롯데글로벌로지스 | 롯데렌탈 (롯데렌터카 · 그린카) | 롯데리조트 | 롯데면세점 | 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 · 롯데콘서트홀) | 롯데물산 (롯데월드타워 · 롯데월드몰) | 롯데미래전략연구소 | 롯데재단 (롯데복지재단 · 롯데삼동복지재단 · 롯데장학재단) | 롯데스카이힐CC | 롯데월드 (어드벤처 · 서울스카이 · 아쿠아리움 · 롯데워터파크) | 롯데인재개발원 | 롯데자산개발 (롯데몰 · 롯데피트인) | 롯데자이언츠 | 롯데정보통신 | 롯데JTB | 롯데캐피탈 | 호텔롯데 (서울 · 월드 · 시티호텔 · 시그니엘) | 부산롯데호텔 | 대홍기획

롯데(일본) 로고 화이트 일본 계열사는

롯데 | 광윤사 | 롯데시티호텔 | 롯데물산 | 롯데리아 | 롯데부동산 | 롯데서비스 | 미도리상사 | 크리스피 크림 도넛 재팬 | 치바 롯데 마린즈

범롯데가

농심그룹 | 푸르밀 | 롯데관광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