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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LG가 가계도를 알아보자! (GS, LG, LIG, LS, LF, 아워홈, 깨끗한 나라 가계도) 구광모 구본식 구본준 구본능 구본걸 구자학 구자두 구자일 구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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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G그룹 구인회와 GS그룹 허만정의 가족관계. 언론 등지에서 범 LG가, 범 GS가, LG일가, GS일가 등으로 불리고 있다. 보통 GS그룹 허 씨도 포함해서 범LG가라고 부르며 따로 범GS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능성 구씨 도원수파 호양공계[1]와 김해 허씨 연당 공파 계열이다.


알파벳 L을 무지 좋아한다.


2. 화려한 혼맥


2.1. 양반가의 혼반(婚班)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 뿌리를 둔 구인회와 허만정은 경상도 지역의 만석꾼 부자인 동시에 양반가문인 능성 구 씨와 김해 허 씨의 후손이다.


구인회의 경우는 9대조 구음(具崟)이 진사-문과 급제-좌승지, 8대조 구문유(具文游)가 진사 급제-고령 현감, 조부 구연호(具然鎬)는 문과 홍문관 교리를 지냈다. 허만정의 경우는 11대조 허동립(許東岦)이 무과 평안도 병마절도사, 6대조 허회(許澮)가 무과 병조참지, 아버지 허준(許駿)이 진사 중추원 의관 및 비서 원승을 지냈다. 이러한 양반 가문끼리의 혼인을 혼반(婚班)이라 하는데 LG그룹은 '재벌가'보다는 '양반가'를 닮았다. 는 기사에서 짐작되듯 양반가끼리의 혼인 전통이 여전히 존재했었다.


허만정의 장남인 허정구의 부인 이행좌는 경주 양동의 여주 이 씨이다. 여주 이씨는 문묘에 종사되고 종묘에 배향되었으며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 남인의 정신적 지주로 받들어지는 회재 이언적의 후손이며 양동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허정구의 손자인 허세홍의 부인 이희정은 쿠첸과 부방그룹 회장 이동건의 딸인데 마찬가지로 양동의 여주 이씨이다.


허창수의 부인 이주영은 전 상공부 차관 이철승의 딸인데 이철승은 연안 이 씨로 부인 이주영도 연안 이 씨이다.


2.2. 재계 혼맥의 핵심


범 LG가는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범LG가는 우리나라 재벌 중 가장 두터운 혼맥을 가진 핵심이라고 한다.


세부적으로는 범LG가 중에서도 범 GS가가 가장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범 LG 가는 범삼성가, 범현대가, 범 한진가, 범두산가, 범금호가, DL그룹, 태광그룹, 동국제강 그룹, 조선일보 가문, 중앙일보 가문, 김앤장, 삼표그룹 등 유력한 재계 가문과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멀리는 동아일보 가문,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일가인 박정희, 노태우, 이명박 일가와도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3. 유교식 종법 질서



구 씨의 경우 종법 질서적 가풍이 강하다. 종법 질서의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구본무의 아들이 요절하자 장조카인 구광모를 입양해 그룹 회장직을 물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원칙 때문인지 승계과정에서 잡음은 없는 편이다. 다만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 때문에 딸이나 동생이 물러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딸이 기업을 이끌고 독립하는 범삼성가나 아예 가문 밖에서 들어온 며느리나 사위가 주요 임원직을 맡는 범현대가와는 달리 며느리와 딸, 사위의 경영 참여가 제한적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룹 내 계열사가 아닌 협력업체 등을 맡는 상황이다. 이 역시 종법 질서적 가풍의 영향이라고 한다.


4. 범 LG그룹 구 씨 가계도


구연호 (1861 ~ 1940) 사간원 정언 / 妻 청주 한 씨 (1863 ~ 1928)

구재서 (1887 ~ 1959) / 妻 하근 (1889 ~ 1969)

 

 

 

 

4.1. 1남 구인회

 

1남 구인회 (1907 ~ 1969) LG그룹 회장 / 妻 허을 수 (1905 ~ 1986)(허만식의 장녀. GS그룹 허정구, 허준구와는 8촌 관계이다.)

 

 

LG그룹 초대 회장 구인회 개명 전 이름 출생 사망 호 직업 학력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 신체 키 

 

개명전 이름 
구정득(具丁得)
출생
1907년 8월 27일
사망
1969년 12월 31일 (향년 62세)

연암(蓮庵)[3]
직업
기업인
학력
지수 공립 보통학교 (졸업)
중앙 고등 보통학교 (중퇴)
부모
아버지 구재서 어머니 하근
형제자매
남동생 구철회, 구정회,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배우자
허을 수
자녀
장녀 구자숙
장남 구자경
차남 구자승
삼남 구자학
사남 구자두
오남 구자일
차녀 구자혜
삼녀 구자영
사녀 구순자
육남 구자극
신체
171cm, 65kg, O형
종교
유교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이자 허만정과 함께 LG그룹의 공동창업주이다.


2. 생애


구인회는 1907년 8월 27일 경상남도 함안군 하봉면 승산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아버지 구재서(具再書)와 어머니 진양 하 씨 하정식(河廷植)의 딸 하근(河近)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구인회의 집안은 본래 경기도 양주, 파주 등지에서 세거 하는 문인 집안이었다. 12대조 구사민(具思閔)은 좌찬성을 지낸 인조의 외할아버지 구사맹의 동생으로, 종 4품 군수를 지냈으며 9대조 구음(具崟)도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승정원 좌승지에 이르렀다. 8대조 구문유(具文游)는 진사시에 급제한 후 고령 현감을 지냈는데, 7대조 구반(具槃) 때부터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고 경상도 진주목으로 내려와 세거 하게 되었으며, 구인회의 조부 구연호(具然鎬)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대대로 벼슬에 진출하지 않았다.


구인회의 조부 구연호는 문과 급제 후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따라서 사업을 시작하는 데 강한 유교 가풍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히려 강한 유교가풍 덕에 할아버지의 지지를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1920년 같은 마을 김해 허 씨 허만식(許萬寔)의 딸 허을수(許乙壽)와 결혼해 6남 4녀를 슬하에 두었다. 이후에 그가 사업을 시작할 때 허만식 일가가 동업하는 형식으로 허씨 집안이 LG의 창업 및 경영에 참여했다.


1921년 지수 공립 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했고, 1924년 중앙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했다가# 3학년 재학 중이던 1926년 중퇴하고 귀향해 지수 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였는데, 이것이 사업가로서의 첫출발이었다.


1931년 진주에서 동생 구철회(具哲會)와 함께 구인회 상점이라는 포목상을 했다. 1941년에는 구인 상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독립운동가인 안희제에게 1만 원을 건네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LG그룹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관련 사료가 부족하며 한겨레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대로 동양척식 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 8천 원을 대출받고, 일제가 조직한 진주 상공회의소의 의원직을 역임함과,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신문광고에 후원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전시에 조선의 물자 통제를 담당했던 경남 상공 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낸 등 친일행위에 대한 관련 근거는 충분하기에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보기엔 불분명하다.


1944년 트럭 30대로 운수업을 시작했다.


1945년 부산에서 조선 흥업사를 설립했다. 이는 당시 미군정청에서 허가받은 무역업 1호 업체이다. 그가 부산에서 사업활동을 하고 있을 때 장인 허만식의 친척 허만정이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 허준구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허만정은 구인회에게 "사돈의 역량을 익히 알고 찾아온 것이니 내 아들 준구를 밑에 두고 사람을 만들어 주소. 나도 사돈 사업에 출자 좀 할 생각이오."라고 부탁했다.


때마침 동생 구정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화장품 판매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판매 대리만 하던 조선 흥업 사는 화장품 생산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생산을 시작하면서 당시 부산 서대신동에 있던 자택은 생산공장으로 바뀌었다. 첫 제품은 러키 크림이었다.(70~80대 어르신들에게 속칭 '동동구리 무'로 잘 알려진 크림 로션이다)


화장품을 만들다가 플라스틱에 대한 이해만 높이면 칫솔, 빗 등의 일상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고 좀 더 본격적인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위해 1947년 1월 5일 자로 락희화학 공업사를 설립하였다.

(락희는 즐거운 락, 기쁠 희 한자에 영어로는 Lucky를 의미하며, 구정회의 아이디어로 상호로 채택했다.)


1952년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빗과 비눗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 빗만 쓰던 사람들은 합성수지 빗에 열광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합성수지 빗을 보고 한국에서 이런 제품이 나온 것에 감격했다고 한다.


1955년 러키 치약을 출시했다. 1956년에 창경원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장에서 럭키치약을 10만 개 무료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결국 출시 3년 만에 당시 시장을 석권한 미국제 콜게이트 치약을 물리치고 국내 시장을 석권했다.


해외원조에 의한 전후 복구사업에 의해 50년대 후반에는 전기통신이 대부분 복구되었다. 이 시기에 구인회는 민간방송의 출연과 라디오에 관심을 두었다. 라디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었지만 전부 외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959년 한국 최초의 전자 공업회 사인 금성사가 설립되었다. 그해 11월 국산 라디오 1호 A-501을 출시했다.


군사정부 출범 이후 군부는 기존 대기업들에게 비료, 정유, 제철, 화섬, 시멘트 등의 기간산업에 진출할 것을 명했다. 이에 구인회는 화섬공장을 짓겠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군부는 LG에게 전선공장을 지을 것을 명령했다. 이를 놓고 재계에서는 기업의 로비라는 억측이 무성했다.


1963년 사돈 이병철(구인회의 3남(구자학 아워홈 대표)이 이병철의 2녀(이숙희 씨)와 결혼)

에게서 방송사업 참여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방송사업에 참여하면 자사의 TV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동양방송을 운영하던 중 경영에 대하여 삼성과 LG 간의 의견 대립이 있어서 이병철과의 토론 끝에 방송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되었다.


1964년 국내 최초의 합성세제인 하이타이를 출시했다.

( 이는 세탁기의 보급과 함께 우리 의생활에 새로운 문화가 허만정의 4남이자 허준구의 동생인 허신구가 태국 출장 도중 주민들이 흰색 가루를 빨래에 뿌려 물에 불렸더니 하얗게 변하는 걸 보고 상품화를 회사에서 제안했으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허신구는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구인회의 승낙을 받아냈고 대박을 친다. 자리 잡는 계기를 불렀다. 같은 해에는 국제신보까지 인수하였다.)


1965년 정부에 정유사업으로 진출하고 싶다고 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1966년 정부가 제2 정유공장 사업 희망자를 모집함에 따라 재계에는 이를 두고 경쟁이 일어났다. LG, 롯데, 한화 등 6개 기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결국 기술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LG가 낙점되었다.


1967년 주방용 액체세제와 두발용 샴푸를 출시했고, 1968년 회갑기념으로 연암 문화재단을 세웠으나 70년대를 불과 하루 앞둔 1969년 12월 31일 밤 12시 15분, 서울 원서동 자택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등졌다. 장례식은 그의 자택에서 간소히 치러져 경기도 용인 군 기흥면 하갈리 선영에 유해가 안장됐다.

 

 

국가
대한민국
창립일
1947년 1월 5일 (74주년)
본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여의도동)
창업주
구인회, 허만정
회장
구광모
유형
대기업, 다국적 기업
규모
대기업
사업분야
전자, 화학, 통신
시가총액
150조 8,940억 원(2021년 8월 16일 기준)
매출액
6조 6,321억(2020) 
영업이익
1조 7,022억(2020)
순이익
1조 5,407억(2020) 
자산총액
(공정자산)
151조 3,220억(2021) 

 


1. 개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쌍둥이 건물이며 LG트윈 타워 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 2020년 기준으로 자산총액 기준 한국 재계 서열 4위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한국 3위이다.. 여담으로 시가총액기준 5위인 롯데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 코로나 19 사태의 영향으로 그룹 시총이 16조까지 추락하여 사실상 한국 경제에 이 4개의 대기업 그룹이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공동창업주는 구인회와 허만정이다.


지주회사 (주) LG가 주축이며 LG화학(구 러키)과 LG전자(구 금성사)가 주요 계열사이다. 금성사는 삼성그룹, 효성그룹과 함께 '성(星)'자 돌림이었는데 세 재벌 가문 사이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GS그룹 허정구는 진주 지수초등학교 동창으로 구 회장과 이 회장은 사돈 사이였는데, 삼성이 전기·전자 제품으로 진출하자 LG 쪽에서 삐쳐서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당시 구인회 회장과 이병철 회장이 담소를 나누다가 이병철 회장이 "전자업종에 진출한다"

(당시 한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삼성은 한국비료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한다. 그래서 비료사업 대신 대체사업으로 선정한 것이 바로 전자사업이었다.)

고 하자 구인회 회장이 "사돈이 하는 업종에 뛰어드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래도 2018년 구본무 회장의 장례와 2019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문했고 202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례에 구광모 회장이 조문한 것을 보면 가문 간의 앙금은 어느 정도 풀린 듯하다.


과거에는 그룹의 주력인 저 두 회사의 이름을 따 러키 그룹 또는 러키 금성그룹이라고 불렸다. 락희화학의 사세가 커져서 그룹의 형태로 처음 조합되던 시절의 명칭은 러키 그룹이었다. 그러다 금성사의 위세가 높아지고 (주)러키와 금성사가 양대 주력 계열사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 그룹의 공식 명칭을 러키 금성그룹으로 개명하게 된다.


1995년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LG로 바꾼다. 그룹에선 LG가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모두들 Lucky와 Goldstar의 앞글자를 딴 것이란 사실을 안다. '러키 금성'그룹이던 시절 줄임말로 '럭금'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구자경 회장은 그걸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친족들에게 방계 계열사들을 모두 분리한 후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 현재는 순환출자 없이 지주회사인 (주) LG 아래로 수직적인 계열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17년에 구본준 부회장 중심의 전면적인 조직개편을 연내 단행했다.


각종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되는 한국의 재벌가 중 욕을 덜 먹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잘했고, 오너 일가가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잘하고 있고, 경영권 분쟁 없이 GS와 계열분리도 무난히 했고, 주주배당도 잘하는 편. 특히, LG전자의 유상증자 때는 무감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 때문에 화제가 됐을 정도. 한국 재벌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욕을 상대적으로 덜 먹는 거지 안 먹는 것은 아니다. 정경유착과 탈세 의혹, 비자금 조성 의혹, 하청업체 착취 논란, 뇌물수수,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 그렇지 LG도 논란이 될만한 흠결은 꽤 많다. 그래도 2016년 국민 여론의 가장 중점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그나마 재벌 중에서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여타 재벌들과는 달리 치명상은 면했다.



2. 역사


일제강점기인 1931년 7월 연암 구인회 창업주가 고향인 경상남도 진주시에 구인회 상점을 개업한 것을 시초로 보기도 한다. 1941년부터 허 씨 일가와 동업을 시작했다.


해방 이후 1947년에 경남 부산시에 락희화학 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했으며

(LG그룹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LG 역사의 시작은 이때부터다. 이 당시 구인회가 살던 서대신동 자택 마당에서 크림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이며 훗날 연지동으로 전용 공장을 옮겼다. 현재는 연지동 옛 공장 부지에 연암 기념관이 있다.)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할 때 정부가 러키 금성 측에 부산·경남 연고팀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각 지역별 연고팀은 해당 지역 출신 기업인이나 연고지역 내에서 사업을 시작한 기업으로 하여금 창단하게끔 했는데 구자경 회장의 출신지도 경남이었고 러키 금성의 창업지도 부산이었기에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에 딱 맞았다. 그러나 내부 사정 탓에 실제 야구단 창단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결국 울산 출신 신격호가 있던 롯데그룹으로 부산·경남 연고팀의 창단 권한이 넘어간다)


'러키 크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동동구리 무'(화장품)를 제조, 판매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플라스틱을 생산한 전력이 있고, 대한민국 최초의 연고 치약인 러키 치약을 개발했다. 1953년 서울사무소를 열고 락희 산업(현 LG상사)을 세워 무역업을 시작한 후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를 설립해 이듬해 국산 라디오를 처음 생산했다. 1966년 최초로 흑백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다.


1968년에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그룹의 형태를 갖추었고, 1969년 그룹본부를 서울 종로구 관철동 대왕빌딩으로 옮겼다. 그 해 구인회 회장이 사망하고 1970년에 장남인 상남 구자경이 가업을 이어받아 국제증권을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1년 서울 중구 도동 삼주빌딩(現 GS건설 사옥)으로 이전 후 1979년에 처음으로 그룹 로고를 도입하고 1983년 그룹명칭을 '러키 그룹'에서 '러키 금성그룹'으로 변경하였고, 1984년 새 CI로 변경했다.


1984년 인하우스 광고기획사인 LG애드가 발족되면서 처음으로 'LG'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LG카드 및 LG 트윈스 등으로 LG라는 명칭은 그룹 내에서 점차 확대되기 시작한다. 1987년 여의도 러키 금성 트윈타워(現 LG 트윈타워)로 이전 후 이듬해, 종합연수원 '인화원(現 LG인화원)'을 열었다. 1990년 기업이념을 변경하고 이듬해부터 주요 계열사에 '사업문화 단위(CU)'를 도입해 기업 단위가 아닌 업종 단위로 사업군을 나누었다.


1995년 1월 그룹명을 'LG'로 변경하고, 이후 러키ㆍ금성ㆍ러키 금성ㆍ희성ㆍ반도ㆍLG 등이 혼재되어있던 각 계열사들의 명칭을 LG로 통일했다. LG 트윈스가 전년도에 잘 나가서 야구 좋아하는 회장이 그룹 명칭을 야구팀 따라 갈아 버렸다는 말이 있으나 그룹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물론 수출 지향형 제조업 기업으로서 해외 시장을 고려한 CI 재정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수도 있겠으나 단순히 CI 통일이 목적이었으면 삼성처럼 굳이 기업명을 바꾸지 않고 해도 된다. 그 해 2월에 구자경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명예회장으로 영전하고, 화담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여 '3세 경영체제'를 이룩해냈다. 1998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2001년과 2002년에 기존 LG화학과 LG전자 법인을 'LGCI'와 'LGEI'란 지주사로 각각 출범시킨 후, 2003년에 두 회사를 합쳐 '(주) LG'란 통합 지주사를 출범시켰다.


2004년에 허 씨 일가를 중심으로 'GS홀딩스'가 세워졌고, 2005년에 57년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가 LG그룹을 분리하여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경영하게 된다. 그 밖에도 분할된 기업이 많은 편이다. 이 기업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 범 LG그룹이다. 애초에 구씨와 허씨의 동업으로 시작했고 그룹 성장 과정에서 회장의 형제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대그룹만큼이나 방계그룹의 규모가 크고 계열사가 많다. 구씨 일가와 허씨 일가의 동업관계와 많은 형제들로 인한 내부 분란을 막기 위하여 인화를 상당히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방대한 가계에도 불구하고 가족 간에 경영권 분쟁이나, 계열 분리 시 잡음이 거의 없었다. 두 가문이 무려 65년 간 동업관계를 유지했다는 것도 대단한 사실이다.

희성그룹: 1992년 구본무의 동생 구본능이 희성금속을 떼내어 독립함.


LF(구 LG패션): 2007년 화담 구본무의 사촌 구본걸이 LG상사에서 분리함.


아워홈: 2000년 구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가 분리. 연암 구인회의 3남 구자학 가계


LIG그룹: 1999년 LG화재를 떼내어 분리. 구인회의 동생 구철회 가계


LS그룹: LG산전 및 LG전선 등을 중심으로 2003년 계열분리. 구인회의 3, 4, 다섯째 동생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가계. 현직 경영진은 이들의 자제들이고 '자'자 돌림으로 구자경의 삼촌뻘이나 조카보다 나이가 적다.


GS그룹: LG그룹의 동업 창업가인 허 씨 가문이 분리한 그룹.

(그룹명 GS가 과거 금성사의 상표이던 GoldStar의 약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 금성사는 전자회사고 LG전자의 이전 사명이기 때문에 전혀 관련이 없다. LG그룹에서 분리할 때 LS가 LG의 L을 따서 만들고 GS는 LG의 G를 따서 만들었다는 게 속설이다. LIG는 LG 사이에 I를 넣었다.)


LX그룹: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전 LG전자 부회장 구본준이 독립하여 세운 기업.



2.1. 범 LG의 금융 잔혹사


범 LG그룹은 유달리 금융업과 인연이 없다. 본래 신용카드, 증권, 화재보험을 위시로 한 금융업은 1990년대까지는 전자, 화학과 함께 LG의 삼각편대라고 할 정도였으나, 2000년대가 시작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원래 단자회사 금성 투자금융이 전환된 보람은행은 IMF 시절 하나은행에 합병되었다.


LG할부금융은 LG카드에 합병되었고, 그 천만인의 카드라던 LG카드는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되어 신한카드에 합병되었다. 이때 채권단의 지원을 받는 대신 LG투자증권을 매각하기로 발표한다. LG투자증권이 사실상 LG금융의 지주회사격이었기에 이는 LG의 금융업 포기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LG투자증권, LG선물, LG투자신탁은 우리 금융지주에 매각되었다가, 우리 금융그룹 민영화로 다시 다 팔려나갔다. 증권은 우리 증권과 합병, 우리 투자증권이 되었다가 다시 농협금융에 팔려 NH농협증권과 합병, NH투자증권이 되었다. 선물은 우리 선물이 되었다가, 증권과 같이 농협에 팔려 NH농협선물과 합병, NH선물이 되었다. 투신은 우리 투자신탁과 합병, 우리 자산운용이 되었다가, 키움증권에 팔려 키움 투자자산운용이 되었다. 부민 상호저축은행은 SLS그룹을 거쳐, 한국·진흥·경기 저축은행에 매각되어 영남 상호저축은행이 되었다가,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 경은·부산·토마토 2 저축은행과 함께 가교 저축은행인 예솔 저축은행으로 흡수된 후 기업은행에 인수되어 IBK저축은행이 되었다.


IMF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LG의 차세대 먹거리는 금융으로 잡힌 적이 있었고, 실제로 매물로 나왔었던 대한생명을 인수하려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생명보험사 2위를 다투던 대한생명을 인수해서 LG의 금융계열을 삼성의 금융에 못지않을 정도로 강화시키려 했다. 이러면 정말 삼성의 기업 포트폴리오와 비슷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는 그룹 내 의견에 결국 구본무 회장은 인수를 하지 않기로 하고, 대한생명은 한화에 매각되어 한화생명으로 개칭한다. 어차피 대한생명을 인수했어도 머지않은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인수해봤자 도로 정리했을 것이다. 향후 금산분리 이슈건까지 있으니 LG그룹 차원에서는 지주회사 체제 개편처럼 미리 금융사를 선제 정리해서 잡음 없이 금융 정리를 끝냈다는 성과는 있다.


이와는 별개로 LG화재를 주축으로 분가하여 범 LG 계열에서 금융은 최고 전문가라고 불렸던 LIG그룹 역시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LIG생명이 시너지 효과 저조를 이유로 우리 금융지주에 매각되어 우리 아비바생명이 되었다가, 우리 금융의 민영화 과정에서 NH농협은행에 매각되었고, 인수한 지 1년도 안 되어 다시 DGB금융지주에 팔려 DGB생명이 되었다. 그룹의 모체인 LIG손해보험은 오너의 무리한 건설업 진출과 그에 따른 회사채 사기 발행의 뒷감당을 위해 매각, KB금융지주에서 인수하여 KB손해보험이 되었다.


LG증권 매각 이후 범 LG가 중 LS그룹에서는 친척이자 금융전문인 LIG그룹과 함께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LS는 종합증권을, LIG는 단종증권을 희망하였기에 의견 차이로 결별했다. LIG그룹에서 설립했던 LIG투자증권(現. 케이프 투자증권)은 LIG손해보험 매각 시 같이 팔렸다가, 인수자인 KB금융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

지점을 모두 폐쇄하고 여의도 본점 영업부만 남겨 덩치를 줄인 후 '케이프 인베스트'라는 조선기자재업체에 매각했고, 사명도 케이프 투자증권으로 바뀌었다.


LS그룹의 오너들이 금산분리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해 우회하여 인수했던 이트레이드증권(現. 이베스트 투자증권)은 재매각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사명을 이베스트 증권으로 바꾸고 계속 매각하려고 노력 중이다. 금산분리 때문에 LS그룹의 오너 개인들이 투자자문사를 인수하여 만든 LS자산운용은 DG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DGB자산운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허 씨家에서 분가한 GS그룹에서도 GS 자산운용을 세웠는데, GS와 그 방계인 코스모그룹까지 휘청이는 상태라 BNK금융지주에 매각하여 BNK자산운용으로 변했다. 범 LG가 금융업체들 중 대주주가 한 번도 안 바뀐 기업은 창업투자사 LB인베스트먼트로, 구인회의 4남 구자두가 소유 중이다.


그러나 금융계열사가 없기에 금산분리로 골치 썩을 걱정 없이 무난히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 한화를 비롯한 금융사를 가진 재벌들은 금산분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실정이다. 금산분리를 다소 완화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동양그룹 사태를 비롯한 재벌들의 병크로 진보, 보수할 것 없이 금산분리를 강화시키려 하는 입장. 롯데그룹이 롯데 지주 체제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들을 매각하게 된 이유가 바로 금산분리 문제 때문이다.


LG의 금융 잔혹사가 역으로 지금 시점에서는 전화위복까지 아니더라도 미리 선제적으로 골치 아픈 씨앗을 제거했다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가장 골치가 아프다. 금산분리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고, 오너 일가가 인수하지 못하면 삼성생명 지배권을 상실하며 인수 자체를 돈 없어서 못한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로 분리 또한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한화는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중이지만 승계 이슈와 맞물러 해법을 내놓기 요원한 상황이다.


정리하면, LG그룹의 방계그룹 분리 이전에 있던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금성 투자금융: 현 KEB하나은행(원조(?) 하나은행과 합병)

LG카드: 현 신한카드

LG투자증권: 현 NH투자증권(우리 증권과 합병된 '우리 투자증권' 시절 이후)

LG선물: 현 NH선물(NH농협선물과 합병된 '우리 선물' 시절 이후)

LG투자신탁: 현 키움투자자산운용(우리투자신탁과 합병된 '우리자산운용' 시절 이후)

부민상호저축은행: 현 IBK저축은행(영남상호저축은행, 영남저축은행, 두 시절 이후)

LG화재: 현 KB손해보험(LIG손해보험 시절 이후)


정리하면 LG의 방계 분리 이후에 생긴 금융사의 현재 상태는...

LIG투자증권: 현 케이프투자증권

LS자산운용: 현 DGB자산운용

GS자산운용: 현 BNK자산운용


LG그룹과 방계그룹 금융사를 한국의 어지간한 금융지주사들은 한번 이상 인수했다(...).


그리고, 범 LG계인 GS그룹이 GS리테일을 통해 케이뱅크은행에 참여하고 있다.(근데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LK자산운용 덕분이다.)


2.2. 반도체 잔혹사


반도체 사업에 철천지 한이 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되자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벌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빅딜' 정책을 추진하는데 LG그룹의 LG반도체를 현대그룹의 현대전자에 억지로 넘겨주게 된다. 구자경 당시 LG그룹 명예회장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은행신규대출을 모두 끊어버리는 금융제재까지 당하자 결국 포기한다. 이때 매각 대금으로 받은 현금으로 데이콤을 인수하고 LG화재그룹을 분가시켰다.


LG는 당시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총수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정부 시책이었던 대북지원에 현대가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곤 했다. 또한 당시 빅딜을 주도한 전경련에 발길을 끊는다. 전경련회관이 그룹 사옥인 LG트윈타워에서 고작 5분 거리인데 1999년부터 전경련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2013년에 갔던 것도 전경련회관이 새로 지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개관 축하행사 참석차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 자의로 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난 뒤 전경련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삼성, 현대, SK, 롯데를 비롯한 대한민국 5대 그룹 중에서 처음으로 전경련에 공식 탈퇴 의사를 통보하며 전경련과의 연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러나 당시 LG반도체는 당시 시장에서 주력으로 팔리던 128Mbit DRAM에 대한 투자는 건너뛰고 히타치로부터 도입한 공정으로 차세대 RAM으로 각광받던 RDRAM 생산에 올인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는데, RDRAM의 참상은 해당 항목 및 제조사 램버스, 주수요처인 펜티엄 3, 펜티엄 4, 참조. 당장 수십억이 없어 대기업 집단들이 무너지던 시절에 안 팔릴 제품에 올인한 LG반도체의 미래는 뻔했을 것이다. 이른바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운명을 가른 '램버스' 사태다. 당시 삼성은 DDR D램을 선택하고, NEC, 히다치 같은 일본 기업들과 LG반도체는 램버스 D램을 선택하는데, 결국 시장에서는 DDR D램이 선택받는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서고, 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일본 10대 전자기업들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순이익을 내게 된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램버스 D램에서 DDR D램으로 옮겨 결국 세계 메모리 3강에 들게 된다. 그렇지만 NEC, 히타치, LG반도체는 끝까지 램버스 D램을 고수한다. 현대전자는 DDR D램을 선택했으나 램버스 D램을 선택한 LG반도체를 인수한 후폭풍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 그때 DDR D램에서 쌓은 저력이 현재 SK하이닉스 경쟁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시장에서 퇴출된 램버스 D램에 올인했던 LG의 운명은 결국 반도체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일본 전자기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훗날 터진 LG의 흑역사 LG카드 사태를 생각하면 LG가 반도체를 안고갈 여력은 더욱 없었다. 오히려 LG반도체가 있었으면 오너 일가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착을 볼 때 그룹 전체가 몰려들어가 연쇄 부실로 그룹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전자는 LG반도체 인수로 현금은 써버리고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불과 1년만에 유동성위기에 봉착했다. 원래 현대전자는 LG그룹의 LG반도체 지분 전부를 인수할 생각은 없었으나 LG그룹에서 아예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해서 무리해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에 이은 형제들의 분가, 현대건설 등 다른 계열사들의 유동성 위기 등이 겹겹이 터지는 바람에 껍데기만 남게 된다. 현대전자의 후신인 반도체사업부는 현재 하이닉스반도체로 존속 중인데 이러한 연유로 하이닉스의 인수전에 LG그룹은 조건없는 인수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결국 2011년 하이닉스반도체는 SK텔레콤에 인수되어 SK하이닉스로 변경된다.


그리고 2017년 8월 SK그룹에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LG실트론을 매각하면서 이제 반도체와 관련된 사업은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아직 실리콘 웍스가 있긴 하지만 이쪽은 중견기업 규모에 LG측에서도 주력은 아니라서 손을 뗀거나 다름없다.


LG에게는 이미 충분히 재인수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하이닉스가 천덕꾸러기 받던 시절에 심지어 LG보다 넘사벽으로 낮은 동부그룹에게도 인수 제의가 갈 정도에 효성그룹 같은 LG에 비해 소규모 재벌의 하이닉스 인수설까지 있었다. 원래 주인이었던 LG에게는 당연히 수많은 인수 제의가 오갔다. 2011년 SK가 인수하기 전에도 LG는 첫번째 인수 후보군이었고, 거의 읍소하는 수준의 조건으로 재인수 제의가 갔지만 LG는 인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은 많으나 간단히 말하면 구본무를 비롯한 구씨 집안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수조원을 써야 하고 다시 수십조를 넣어야 할지 모르는 반도체 인수 결정은 결국 오너가 하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으로 LG 구씨 측에서는 원래 자기 것이었던 하이닉스를 거액을 들여 다시 인수해야 하는 것에 반감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도체 치킨게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막대한 자금 투입에 부담을 크게 느껴 인수를 하지 않았다. 구본무는 반도체 사업이 잘못되면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결국 SK가 인수를 했고 운좋게 반도체 치킨게임이 종식되면서 한국 M&A 역대 1위를 다투는 성공적인 기업 인수 성과를 거두었다. 만약 LG에서 재인수했다면 본의 아니게 '램버스' 사태를 남의 힘으로 해결하고 또 미국에서 중국의 반도체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는 분야가 비메모리가 아닌 메모리 분야인 걸 볼 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당시 SK와 LG는 3, 4위에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었다. 하이닉스 인수로 두 그룹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하이닉스 인수전까지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LG가 근소하게 앞서던 시절이 있었지만 하이닉스 인수 기점으로 잭팟을 터트린 SK는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모두 LG와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 3위로 올라섰다. 현재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과 자산규모가 고작 몇조밖에 차이 안 날 정도로 어마무시한 이득과 성장을 일구었다. 반면 LG는 도저히 SK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나는 4위로 주저앉았고 5위인 롯데그룹과 경쟁도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LG가 하이닉스를 재인수했다면 SK와 같은 잭팟을 터트렸을지도 불확실하다. SK는 텔레콤과 정유 사업으로 축적된 현금이 매우 풍부하고 수십조를 쏟아야 하는 반도체 특성상 지금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착공 등을 비롯하여 열심히 투자운영중이다.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는 LG가 하이닉스를 인수했다 해서 SK만큼 잭팟을 터트릴지 그야말로 넌센스.


여담로 이 당시 외부전문 평가기관으로 미국계 경영자문사인 '아서 디 리틀(ADL)'이 선정됐고, 당시 ADL 평가단의 핵심 구성원 중 1명이 넥센 히어로즈의 그 이장석이었다. 관련 기사 ADL 측에서 현대전자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바람에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현대그룹 계열 분리 당시 하이닉스의 계열사였던 현대 유니콘스 역시 이후 자금난을 겪으면서 2008년에 해체되었고, 이 사단의 첫 시작에 관여한 이장석이 현대의 선수단을 사들여서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한 것. 그리고 이후 LG 트윈스가 히어로즈에게 몇 차례 선수 트레이드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까지 고려하면 너무 깊은 악연이다.


2.3. 영속성을 구축한 LG



현시대에서 LG는 삼성, SK, 현대를 비롯한 다른 그룹에 비해 경영 형태와 기업 문화가 보수적에 경직성이 강하고, 특히 오너 일가가 서초동(검찰청)에 가는 것을 한사코 꺼리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LG는 한국 5대 재벌(삼성, 현대, SK, LG, 롯데) 중 총수 일가가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물론 방계로 따지면 존재한다. 기업 말아먹고 구속된 LIG 일가라던지, 구본무와 5촌관계인 판토스 오너인 구본호 등.

그리고 판토스 인수로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바로 오너 일가 지분을 법에 맞게 정리해버렸다. 2021년 외주업체의 청소노동자 해고 시위에서 청소업체의 대주주가 구광모 회장의 고모라는 사실이 보도되자, 두 고모가 바로 지분을 처분하고, 분쟁 해결을 약속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만큼 LG는 서초동과 연관되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여긴다. 장기적으로 엄청난 장점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삼성과 달리 최순실 게이트와도 무관해서 이미지면에서 여러 이득을 보았고, 10대 재벌 가운데 현대중공업, GS 등과 더불어 연관성이 없었고, 도리어 피해를 본 입장이라 국회의원들에게도 큰소리 쳤다. 정경유착의 폐해를 덜 겪은 셈.


특히 상속 문제에서 현시대의 LG급 재벌들은 대를 이은 상속이 계속 불가능하다. 삼성의 이재용은 상속 문제로 감옥에 갔고 다시 감옥에 갈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결국 대외적으로 4세 승계 포기선언까지 해버린다.

현대차의 정의선도 지금 순환출자 때문에 곤란한 실정이며, 후대 승계를 감안하면 암담한 수준이다. SK는 LG와 같은 지주회사 체제지만, 지분율이 LG보다 탄탄하지 못해서 쉽지 않다. 반면 구광모의 LG 승계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상속세를 냈지만 그야말로 깔끔하고 탄탄하다. 구씨 친족들이 (주)LG의 지분율을 안정적으로 40~50%대를 계속 유지하며 대를 이은 영속을 구축했다. GS와 더불어 5세, 6세를 가더라도 구씨 오너가 바뀌지 않을 정도. 김상조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괜히 재벌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LG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보수든 진보든 LG의 상속과 지배구조는 꼬투리 잡을 이유가 없는 것.


다른 재벌보다 당장 손익이 뒤쳐지더라도 LG만의 장단점이 있는 셈. 그룹 분가 역시 GS, LS, LIG, LX를 비롯한 방계들이 독립할 때 어떠한 잡음 하나 없었다. 2020년 확정된 구본준의 LX그룹 계열분리 역시 LG의 규모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의 회사들을 가져가며, 반대로 구본준 또한 손해보지 않는 회사들을 얻었다. 구본준의 LG 지분처리는 구본준이 가져가는 LG상사 등의 LG 보유지분과 맞교환해서 LG 본가의 지배력을 유지시킨 깔끔한 계열분리다. 다른 재벌들이 상속, 왕자의 난, 계열분리로 얼마나 막장을 겪었는지 그리고 향후 치뤄야 할 재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아주 모범적.


다만 SK, 롯데 등이 아직 분가와 독립을 하지 않아서 LG와 경쟁하거나 더 큰 규모의 재벌이 된 것을 생각하면 꼭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단적으로 계열분리한 범 LG가를 합치면 자산 240조 이상의 재계 2위 규모다. 경쟁 기업들이 합병으로 거대규모의 하나의 기업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트렌드에서 2020년에도 발생된 LG 방계들의 독립은 LG의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약 방계들이 독립하지 않았으면 LG의 사이즈는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이제 독립할 방계들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앞으로 LG가 어떤 식으로 다시 치고 올라올지 매우 중요한 시기다.


3. 오너 일가


창업주는 연암 구인회이며, 현 회장은 구광모다.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기도 하다.출처 사농공상 일례로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로 인해, 딸은 물론 안주인들조차 문밖 출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 일가의 여성(이명희, 이부진 등)들이 기업 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


경영 승계에서도 마치 옛 양반 가문이나 조선 왕실처럼 장남 승계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초대 구인회부터 구본무까지 모두 장남이며, 구본무의 경우 유일한 아들이 사고로 일찍 죽자 딸들에게 승계하지 않고 조카인 구광모(동생인 구본능의 아들)를 양자로 입양했다. 굉장히 보수적인 원칙이지만 대신 이른바 '왕자의 난'과 같은 재산 상속 및 경영권 계승과 관련된 갈등은 적은 편이다.



4. 경영진


4.1. 회장급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



4.2. 부회장급


권영수 (LG 대표이사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


4.3. 사장 및 부사장급


홍범식 (LG 경영전략팀장 사장)

이방수 (LG CSR팀장 사장)

권봉석 (LG전자 대표이사 사장)

박일평 (LG전자 CTO 겸 SW센터장 사장)

홍순국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장 사장)

권순황 (LG전자 BS사업본부장 사장)

이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 사장)

김진용 (LG전자 VS사업본부장 부사장)

박형세 (LG전자 HE사업본부장 부사장)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부사장)

이연모 (LG전자 MC사업본부장 부사장)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장 사장)

노국래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 부사장)

차동석 (LG화학 CFO 부사장)

김성민 (LG화학 CHO 부사장)

남철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장 전무)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

김명환 (LG에너지솔루션 CPO 사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김영섭 (LG CNS 대표이사 사장)

정철동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

윤춘성 (LG상사 대표이사 부사장)

이명관 (LG인화원장 사장)

김영민 (LG경제연구원장 부사장)

강계웅 (LG하우시스 대표이사 부사장)

이동열 (S&I 코퍼레이션 대표이사 사장)

이규홍 (LG스포츠 대표이사 사장)

최원혁 (판토스 대표이사 부사장)

정성수 (지투알 대표이사 부사장)

손보익 (실리콘윅스 대표이사 사장)

이유진 (팜한농 대표이사)



4.4. 역대 임원


회장

 

 


부회장

구본무 (1989~1993)

회장실 사장: 구 기획조정실 사장.

허준구 (1968~1970)

구정회 (1970~1971)

김주홍 (1971~1978)

이헌조 (1978~1984)

변규칠 (1984~1989/1991~1995)

김지주 (1989~1991)

이문호 (1995~1998)

구조조정본부장

이문호 (1998)

강유식 (1998~2003)

전자 CU장

이헌조 (1991~1995)

구자홍 (1995~2003)

김쌍수 (2003)

화학 CU장

최근선 (1991~1994)

성재갑 (1994~2001)

정유 CU장

구두회 (1991~1995)

허동수 (1995~1998)

산전 CU장

이희종 (1991~1997)

이종수 (1997~1998)

유통 CU장

강말길 (1995~1998)

증권 CU장

진영일 (1995~1998)

보험 CU장

민수기 (1995~1997)



5. 변천사


4.1.1. 1녀 구자숙


1녀 구자숙 (1924 ~ ) / 夫 박진동 (1919 ~ 1946)


4.1.2. 1남 구자경 (LG그룹, 희성그룹, LX그룹, 깨끗한나라, LT그룹)


1남 구자경 (1925 ~ 2019) LG그룹 명예회장 / 妻 하정임 (1924 ~ 2008)

→1남 구본무 (1945 ~ 2018) LG그룹 회장 / 妻 김영식 (1952 ~ )

→→1남 구원모 (1974 ~ 1994)

→→1녀 구연경 (1978 ~ ) / 夫 윤관 (1975 ~ ) 블루런벤처스 대표

→→양자 구광모 (1978 ~ ) LG그룹 회장 / 妻 정효정 (1982 ~ )(정기련 보락 대표의 장녀)

→→→1남 1녀

→→2녀 구연수 (1996 ~ )

→1녀 구훤미 (1947 ~ ) 오성로지스 대표 / 夫 김화중 (1943 ~ 2004) 희성금속 회장

→→1녀 김선혜 (1971 ~ ) / 夫 이해욱 (1968 ~ ) DL그룹 회장

→→→1녀 이지원 (1999 ~ )

→→→1남 이동훈 (2001 ~ )

→→→2녀 이지희 (2004 ~ )

→2녀 김선정 (1974 ~ ) / 夫 김현준

→3녀 김서영 (1978 ~ ) / 夫 김태현

→4녀 김서은 (1978 ~ ) / 夫 김주환

→1남 김주영 (1992 ~ )

→2남 구본능 (1949 ~ ) 희성그룹 회장 /妻강영혜 (1953 ~ 1996)/ 妻 차경숙 (1966 ~ )

→→1남 구광모 (1978 ~ )

→→1녀 구연서 (1999 ~ )

→3남 구본준 (1951 ~ ) LX그룹 회장 / 妻 김은미 (1957 ~ )

→→1남 구형모 (1987 ~ ) LG전자 과장

→→1녀 구연제 (1990 ~ )

→2녀 구미정 (1955 ~ ) / 夫 최병민 (1952 ~ ) 깨끗한나라 회장

→→1녀 최현수 (1979 ~ ) 깨끗한나라 대표이사 부사장

→→2녀 최윤수 (1982 ~ ) 나라손 대표

→→1남 최정규 (1991 ~ )

→4남 구본식 (1958 ~ ) LT그룹 회장 / 妻 조경아 (1960 ~ )

→→1녀 구연승 (1984 ~ )

→→2녀 구연진 (1986 ~ )

→→1남 구웅모 (1989 ~ )


4.1.3. 2남 구자승 (LF)



2남 구자승 (1929 ~ 1974) LG상사 사장 / 妻 홍승해 (1934 ~ )

→1남 구본걸 (1957 ~ ) LF 회장

→→1녀 구수연 (1990 ~ )

→→1남 구경모 (1997 ~ )

→2남 구본순 (1959 ~ ) 前 고려조경 부회장

→1녀 이은영(前 구은영) (1961 ~ )[28] / 夫 이종서 (1958 ~ )

→3남 구본진 (1964 ~ ) LF 부회장


4.1.4. 3남 구자학 (아워홈)


3남 구자학 (1930 ~ ) 아워홈 회장[29] / 妻 이숙희 (1935 ~ )

→1남 구본성 (1957 ~ )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 妻 심윤보 (1961 ~ )

→→1남 구재모 (1993 ~ )

→1녀 구미현 (1960 ~ ) / 夫 이영렬 (1955 ~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녀 구명진 (1964 ~ ) / 夫 조정호 (1958 ~ )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1녀 조효재 (1989 ~ )

→→1남 조원기 (1992 ~ )

→→2녀 조효리 (2001 ~ )

→3녀 구지은 (1967 ~ ) 캘리스코 대표이사 / 前夫 지상욱 (1965 ~ )


4.1.5. 4남 구자두


4남 구자두 (1932 ~ ) LB인베스트먼트 회장 / 妻 이의숙 (1938 ~ )

→1녀 구혜란 (1960 ~ ) / 夫 심현주 (1955 ~ )

→2녀 구혜선 (1962 ~ ) / 夫 장원우 (1961 ~ )

→1남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 / 妻 이성은 (1969 ~ )

→→1남 구상모

→2남 구본완 (1966 ~ ) LB휴넷 대표

→→1남 구인모


4.1.6. 5남 구자일



5남 구자일 (1935 ~ ) 일양화학 회장 / 妻 김청자 (1939 ~ 1995)

→1남 구본길 (1966 ~ ) 희성전자 사장

→→1남 구현모 (1996 ~ )

→1녀 구은미 (1967 ~ ) 반도아이엔씨 사외이사


4.1.7. 2녀 구자혜


2녀 구자혜 (1937 ~ 2009)/ 夫 이재연 (1931 ~ ) 前 LG그룹 부회장

→1남 이선용 (1961 ~ ) 베어트리파크 대표 / 妻 오은주 (1965 ~ )

→→1녀 이혜미 (1989 ~ )

→→2녀 이혜진 (1990 ~ )

→→3녀 이혜연 (1995 ~ )

→→1남 이해성 (1998 ~ )

→2남 이지용 (1963 ~ ) 제이알더블유 대표 / 妻 추재희 (1967 ~ )

→→1남 이해민 (1992 ~ )

→→1녀 이혜수 (1996 ~ )

→1녀 이혜정 (1968 ~ ) / 夫 김준홍 (1966 ~ )

→→1녀 김지아

→→2녀 김지나


4.1.8. 3녀 구자영



3녀 구자영 (1939 ~ ) / 夫 이재원 (1937 ~ ) 일성제지 회장

→1남 이욱진 (1969 ~ ) 삼본정밀전자 이사


4.1.9. 4녀 구순자


4녀 구순자 (1943 ~ ) / 夫 류지민 (1941 ~ 1981) 前 서울지검 검사


4.1.10. 6남 구자극


6남 구자극 (1946 ~ ) 엑사이엔씨 회장 / 妻 조아란 (1951 ~ )

→1남 구본현 (1968 ~ ) 前 엑사이엔씨 대표이사

→2남 구본우 (1979 ~ )

→1녀 구미란 (1982 ~ )


4.2. 2남 구철회


2남 구철회 (1911 ~ 1975) LG그룹 창업고문 / 妻 안남이 (1910 ~ 1982)


4.2.1. 1녀 구위숙


1녀 구위숙 (1928 ~ ) / 夫 허준구 (1923 ~ 2002) LG건설 명예회장

→1남 허창수 (1948 ~ ) GS그룹 명예회장, GS건설 회장 / 妻 이주영

→→1녀 허윤영 (1977 ~ ) / 前夫 김현주

→→1남 허윤홍 (1979 ~ ) GS건설 사장

→→→1남 2녀

→2남 허정수 (1950 ~ ) GS네오텍 회장 / 妻 한영숙

→→1남 허철홍 (1979 ~ ) GS칼텍스 상무

→→2남 허두홍 (1982 ~ )

→3남 허진수 (1953 ~ ) GS칼텍스 회장 / 妻 이영아

→→1남 허치홍 (1983 ~ ) GS리테일 부장

→→2남 허진홍 (1985 ~ )

→4남 허명수 (1955 ~ ) GS건설 부회장 / 妻 노경선

→→1남 허주홍 (1983 ~ ) GS칼텍스 부장

→→2남 허태홍 (1985 ~ )

→5남 허태수 (1957 ~ ) GS그룹 회장 / 妻 이지원

→→1녀 허정현 (2000 ~ )


4.2.2. 2녀 구영희


2녀 구영희 (1931 ~ ) / 夫 이호덕 (1928 ~ )


4.2.3. 1남 구자원(LIG그룹)


1남 구자원 (1935 ~ 2020) LIG그룹 회장 / 妻 유영희 (1942 ~ )

→1녀 구지연 (1966 ~ )

→→1남 선동민

→2녀 구지정 (1967 ~ )

→→1남 한준구 (1991 ~ )

→→1녀 한세희 (1994 ~ )

→1남 구본상 (1970 ~ ) 前 LIG넥스원 부회장

→→1녀 구연주 (1998 ~ )

→→1남 구창모 (2002 ~ )

→2남 구본엽 (1972 ~ ) 前 LIG건설 부사장

→→1남 구영모

→→1녀 구한주 (2005 ~ )


4.2.4. 3녀 구자애


3녀 구자애 (1939 ~ ) / 夫 정승화 (1934 ~ )


4.2.5. 2남 구자성


2남 구자성 (1942 ~ 1995) LG건설 사장 / 妻 이갑희 (1944 ~ )

→→1녀 구본희 (1968 ~ ) / 夫 정연준 (1964 ~ )

→→2녀 구본주 (1970 ~ ) / 夫 진상범 (1969 ~ )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

→→1남 구본욱 (1977 ~ ) LK투자파트너스 대표


4.2.6. 4녀 구선희


4녀 구선희 (1944 ~ ) / 夫 박용훈 (1942 ~ 2012)


4.2.7. 3남 구자훈


3남 구자훈 (1947 ~ ) LIG문화재단 이사장 / 妻 임방인 (1944 ~ )

→1녀 구현정 (1970 ~ ) / 夫 Eric Hoffman (1963 ~ )

→2녀 구윤정 (1973 ~ ) / 夫 Harold Kim

→3녀 구문정 (1975 ~ ) / 夫 박재영 (1970 ~ )

→1남 박준명 (2000 ~ )


4.2.8. 4남 구자준


4남 구자준 (1950 ~ ) 前 LIG손해보험 회장, 한국배구연맹 총재 / 妻 이영희 (1952 ~ )

→1남 구동범 (1975 ~ ) 인베니아 사장

→2남 구동진 (1977 ~ ) 인베니아 부사장


4.3. 3남 구정회


3남 구정회 (1918 ~ 1978) 前 금성사 사장 / 妻 김증문 (1917 ~ ?)

→1남 구자윤 (1937 ~ 1994) LG유통 사장 / 妻 정정자 (1943 ~ )

→→ 1남 구본영 前 지수물류 대표

→2남 구형우 (1943 ~ ) 前 부민상호저축은행 회장 / 妻 이화숙 (1948 ~ )

→ 1녀 구숙희 (1946 ~ ) / 夫 이규영 (1943 ~ )

→ 3남 구자헌 (1948 ~ 1999) 범한물류 회장 / 妻 조원희 (1950 ~ ) 前 범한판토스 상근고문, 레드캡 투어 대표

→→ 1남 구본호 (1975 ~ ) 前 범한판토스 대주주

→4남 구자섭 (1950 ~ ) 한국SMT 사장 / 妻 심영숙 (1954 ~ )

→→1남 구본근

→2녀 구명희 (1953 ~ ) / 夫 하영준 (1949 ~ )

→5남 구자민 (1955 ~ ) 한국SMT 부사장 / 妻 박정화 (1955 ~ )

→→1녀 구은진 (1984 ~ )



4.4. 4남 구태회


4남 구태회 (1923 ~ 2016) LS전선 명예회장 / 妻 최무 (1922 ~ 2012)

→ 1녀 구근희 (1943 ~ ) / 夫 이준범 (1941 ~ ) 화인 회장

→→1녀 이미영 (1967 ~ )

→→2녀 이지현 (1972 ~ ) / 夫 김환승

→→ 1남 이재우 (1973 ~ ) / 妻 이승아 (1975 ~ )

→→→1녀 이소현 (2004 ~ )

→1남 구자홍 (1946 ~ ) LS니꼬동제련 회장 / 妻 지순혜 (1947 ~ )

→→1녀 구나윤 (1977 ~ )

→→1남 구본웅 (1979 ~ ) 포메이션8그룹 대표

→2녀 구혜정 (1948 ~ ) / 夫 이인정 (1948 ~ ) 태인 회장

→→1남 이대현 (1974 ~ )

→→2남 이상현 (1977 ~ ) 태인 대표이사

→2남 구자엽 (1950 ~ ) LS전선 회장 / 妻 김태향 (1950 ~ 2012)

→→1녀 구은희 (1976 ~ ) / 夫 정일선 (1970 ~ )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 사장

→→1남 정창현 (1998 ~ )

→→1녀 정진주 (1999 ~ )

→→2남 정창민 (2001 ~ )

→1남 구본규 (1979 ~ ) LS산전 전무

3남 구자명 (1952 ~ 2014) LS니꼬동제련 회장 / 妻 조미연 (1952 ~ ) 前 경희학원 이사

→1남 구본혁 (1977 ~ ) LS니꼬동제련 부사장

→→1녀 구소영 (2003 ~ )

→→2녀 구다영 (2004 ~ )

→1녀 구윤희 (1982 ~ ) / 夫 정대현 (1977 ~ )

4남 구자철 (1955 ~ ) 예스코홀딩스 회장 / 妻 홍정원 (1955 ~ )

→1녀 구원희 (1980 ~ ) / 前夫 박서원 (1979 ~ ) 두산매거진 대표이사


→1남 구본권 (1984 ~ ) LS니꼬동제련 부장


4.5. 5남 구평회


5남 구평회 (1926 ~ 2012) E1 명예회장 / 妻 문남 (1927 ~ )

→1남 구자열 (1953 ~ ) LS그룹 회장 / 妻 이현주 (1957 ~ )

→→1녀 구은아 (1981 ~ ) / 夫 이우성 (1978 ~ ) 이테크건설 전무

→→1남 구동휘 (1982 ~ ) LS산전 상무 / 妻 박상민 (1990 ~ )

→→2녀 구은성 (1987 ~ )

→2남 구자용 (1955 ~ ) LS네트웍스 회장 / 妻 이현주 (1959 ~ )

→→1녀 구희나 (1984 ~ ) / 夫 홍정국 (1982 ~ ) BGF리테일 대표이사 사장

→→2녀 구희연 (1989 ~ ) / 夫 박신현 (1982 ~ )

→3남 구자균 (1957 ~ ) LS산전 회장 / 妻 독고진 (1959 ~ )

→→1녀 구소연 (1985 ~ ) / 夫 원홍식 (1981 ~ )

→→2녀 구소희 (1986 ~ ) / 前夫 윤보현 (1983 ~ )

→1녀 구혜원 (1959 ~ ) 푸른그룹 회장 / 夫 주진규 (1956 ~ 1999) 푸른그룹 회장

→→1남 주신홍 (1983 ~ )

→→1녀 주은진 (1986 ~ )

→→2녀 주은혜 (1988 ~ )


4.6. 6남 구두회


6남 구두회 (1928 ~ 2011) 예스코 명예회장 / 妻 유한선 (1933 ~ )

→1녀 구은정 (1961 ~ ) 태은물류 대표 / 夫 김중민 (1957 ~ ) 스탭뱅크 회장

→→1남 김태익

→→1녀 김지선

→→2녀 김국선

→2녀 구지희 (1963 ~ )

→1남 구자은 (1964 ~ ) LS엠트론 회장 / 妻 장인영 (1968 ~ )

→→1녀 구원경 (1993 ~ )

→→2녀 구민기 (2005 ~ )

→3녀 구재희 (1967 ~ ) / 夫 김동범


4.7. 기타


구자신 쿠쿠 회장 / 妻 최영순

→1남 구본학 쿠쿠 대표이사 사장

→2남 구본진



5. 범GS그룹 허씨 가계도


허만정 (1897 ~ 1952) LG그룹 공동창업주, GS그룹 시조 / 妻 초계정씨 (1895 ~ 1937) / 妻 하위정 (1916 ~ ?)


5.1. 1남 허정구


1남 허정구 (1911 ~ 1999) 삼성그룹 공동창업주, 삼성물산 초대 사장, 삼양통상 명예회장 / 妻 이행좌 (1917 ~ 2004)[86]

1남 허남각 (1938 ~ ) 삼양통상 회장[87] / 妻 구자영 (1937 ~ ) 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88]

→1녀 허정윤 (1971 ~ ) / 夫 정대호 (1968 ~ ) 대화 대표[89]

→1남 허준홍 (1975 ~ ) 전 GS칼텍스 부사장 / 妻 유재상[90]

1녀 허영자 (1941 ~ ) / 夫 김희철 (1938 ~ ) 벽산그룹 회장

→1남 김성식 (1967 ~ ) 벽산 대표이사 사장

→2남 김찬식 (1969 ~ )

→1녀 김은식 (1971 ~ )

2남 허동수 (1943 ~ ) GS칼텍스 명예회장, 연세대학교 이사장 / 妻 김자경 (1950 ~ )[91]

→1남 허세홍 (1969 ~ ) GS칼텍스 대표이사 사장 / 妻 이희정 (1968 ~ )[92]

→2남 허자홍 (1972 ~ ) 에이치플러스에코 대표이사 / 妻 신혜진 (1975 ~ )

→1녀 허지영 (1980 ~2020 ) / 夫 이인범 (1971 ~ )[93]

3남 허광수 (1946 ~ )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 妻 김영자 (1950 ~ )[94]

→1녀 허유정 (1974 ~ ) / 夫 방준오 (1974 ~ )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95]

→→1남 방인성 (2001 ~ )

→→2남 방현성 (2003 ~ )

→→3남 방진성 (2010 ~ )

→1남 허서홍 (1977 ~ ) GS에너지 전력·집단에너지사업부문장 / 妻 홍정현 (1980 ~ ) 온지음 기획위원[96]

2녀 허영숙 (1952 ~ ) / 夫 윤후명 한국문학원 원장


5.2. 2남 허학구



2남 허학구 (1912 ~ 1999) 새로닉스 회장 / 妻 최필선

→1남 허전수 (1944 ~ 2010) 새로닉스 회장 / 妻 배진숙 (1952 ~ )

→→1남 허제홍 (1976 ~ ) 엘엔에프 대표이사

→1녀 허명자

→2녀 허혜자

→3녀 허숙원


5.3. 3남 허준구 (GS그룹)


3남 허준구 (1923 ~ 2002) LG건설 명예회장[97] / 妻 구위숙 (1928 ~ )[98]

→1남 허창수 (1948 ~ ) GS그룹 명예회장, GS건설 회장 / 妻 이주영 (1952 ~ )[99]

→→1녀 허윤영 (1977 ~ ) / 前夫 김현주[100]

→→1남 허윤홍 (1979 ~ ) GS건설 사장 / 妻

→→1남 2녀

→2남 허정수 (1950 ~ ) GS네오텍 회장 / 妻 한명숙 (1954 ~ )

→→1남 허철홍 (1979 ~ ) GS칼텍스 전무

→→2남 허두홍 (1982 ~ )

→3남 허진수 (1953 ~ ) GS칼텍스 회장 / 妻 이영아 (1958 ~ )

→→1남 허치홍 (1983 ~ ) GS리테일 상무

→→2남 허진홍 (1985 ~ ) GS건설 상무보

→4남 허명수 (1955 ~ ) GS건설 부회장 / 妻 노경선 (1960 ~ )[101]

→→1남 허주홍 (1983 ~ ) GS칼텍스 상무

→→2남 허태홍 (1985 ~ ) GS퓨처스 대표

→5남 허태수 (1957 ~ ) GS그룹 회장 / 妻 이지원 (1962 ~ )[102]

→→1녀 허정현 (2000 ~ )


5.4. 4남 허신구


4남 허신구 (1929 ~ 2017) GS리테일 명예회장 / 妻 윤봉식 (1932 ~ 2016)

→1남 허경수 (1957 ~ ) 코스모그룹 회장 / 妻 함경희[103]

→→1녀 허수연 (1986 ~ )

→→2녀 허지연 (1987 ~ ) / 夫 박철완 (1978 ~ )[104]

→→1남 허선홍 (1999 ~ )

→1녀 허연호 (1958 ~ ) / 夫 최대식 (1956 ~ )

→2녀 허연숙 (1960 ~ ) / 夫 박재열 (1958 ~ )

→2남 허연수 (1961 ~ ) GS리테일 부회장

→→1남 허원홍 (1991 ~ )[105]

→→1녀 허성윤 (1993 ~ )


5.5. 5남 허완구


5남 허완구 (1936 ~ 2017) 승산 회장 / 妻 김영자 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1남 허용수 (1968 ~ ) GS에너지 대표이사 사장 / 妻 정혜신[106]

→→1남 허석홍 (2001 ~ )[107]

→→2남 허정홍 (2004 ~ )

→1녀 허인영 (1972 ~ ) 승산 대표이사


5.6. 6남 허승효


6남 허승효 (1944 ~ ) 알토그룹 회장 / 妻 최윤혜 (1944 ~ )

→1남 허영수 (1969 ~ ) 알토 사장

→→1녀 허임수 (1970 ~ )

→2남 허윤수 (1973 ~ )


5.7. 7남 허승표


7남 허승표 (1946 ~ ) 피플웍스 회장 / 妻 조희숙

→1녀 허서정 (1976 ~ )

→1남 허준수 (1977 ~ )


5.8. 8남 허승조


8남 허승조 (1950 ~ ) 前 GS리테일 부회장 / 妻 이경훈 (1954 ~ )[108]

→1녀 허지안 (1981 ~ )

→2녀 허민경 (1983 ~ )



6. 범LG가 기업 회장단

 


구광모 프로필 나이 직업 학력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 재산 

출생
1978년 1월 23일 (43세)
직업
기업인
현직
LG 대표이사 회장
학력
경복초등학교 (졸업)
봉은중학교 (졸업)
영동고등학교 (졸업)
로체스터 공과대학[2] (컴퓨터과학 / 학사)
부모
친부 구본능 친모 강영혜
양부 구본무 양모 김영식
형제자매
양형 구원모(1974 ~ 1994)
양누이 구연경(1978 ~ )
양여동생 구연수(1996 ~ )
이복여동생 구연서(1999 ~ )
배우자
정효정
자녀
슬하 1남 1녀
병역
산업기능요원 소집해제
재산
23억 달러 (한화 약 2조 6,500억 원)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LG그룹의 4대 회장이자 재벌 4세이다.


2004년 12월에는 큰아버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대한민국 재계 4위 LG그룹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8년 6월 29일 지주회사인 (주)LG의 대표이사 회장직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LG그룹의 총수로 자리잡았다.


권위주의적인 모습을 타파하기 위해서인지 특이하게도 대외적으로는 '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대표'로 불리고 있다.


2. 생애


1978년 1월 23일, 희성그룹 회장 구본능(具本綾)과 강영혜(姜暎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 경복초등학교와 봉은중학교,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1. LG그룹 방계에서 LG그룹의 후계자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 뉴욕 주에 위치한 로체스터 공과대학(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LG그룹은 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타 재벌과는 달리 가부장적인 가풍이 강해서 철저히 장자승계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그래서 구본무 회장은 아들이 사망한 후 51세에 늦둥이까지 봤는데 딸이었다. 그래서 첫째 큰 남동생의 장남인 구광모를 양자로 삼게 되었다.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료 직원들과 격의없이 소통하는 등 소탈하게 지내지만, 업무에서는 강한 실행력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자인 정효정은 중소기업 보락의 정기련 대표의 장녀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0년대 중반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인에 따르면 효정 씨는 성격이 원만하고 매사에 성실해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처음 보락 측에서 굴지의 재벌가와 사돈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졌다. 그러나 거꾸로 LG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원하고 나서며 2009년 결혼했다.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2.2. LG그룹 내에서의 커리어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LG그룹에 입사한 후, 2007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MBA(경영학 석사학위)과정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8월 LG전자에 복귀한 뒤 2011년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1월 국내로 들어와 3월 HE사업본부 TV선행상품 기획팀 등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치고 (주)LG 시너지팀 부장으로 이동했고 2016년에는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예상과는 다르게 상무 직급을 유지한 채 LG전자 B2B 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구본무 회장 타계로 2018년 6월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구광모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 19.9%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자회사 서브원의 지분 60.1% 지분을 매각했다.


2.3. LG그룹 회장 취임 및 활동


양부이자 큰아버지였던 구본무 회장이 1년 간의 뇌종양 투병 끝에 2018년 5월 20일 사망한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6월 29일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만 40세로 젊은 축에 들긴 하지만, 사상 최연소 재벌 총수는 아니다. 최연소는 1981년 한화그룹을 승계한 김승연 회장의 29세.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36세),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35세)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 정주영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취임한 경우고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계열분리되어 독립한게 아니라 현대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아니라 계열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룹으로 독립하여 회장으로 취임한건 정주영의 사후에 생긴 일이다.


여러모로 제일 비슷한 케이스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인데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사망했을 당시 만 40세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도 SK그룹은 재계 10위 안쪽의 그룹이었다. 구광모 회장이 마흔 살에 취임하는 것도 어리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20년 전에는 더더욱 심해서 최종현 회장의 가신 중의 가신이던 손길승 회장이 임시로 SK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2004년에야 최태원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18일에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으로서 사절단에 합류했는데,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고 볼 수 있다.


구본무의 유족들이 납부할 상속세는 총 9,179억 원이며, 이 중 구광모가 내야 할 상속세는 약 7,200억 원이라고 한다. 구광모 회장이 상속세를 완납할 경우 2003년 신용호 교보생명 전 회장이 사망하고 신창재 회장이 상속받으면서 낸 상속세 1,830억 원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2018년 11월 30일,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다른 상속인들과 함께 전체 상속세 9,215억 원의 1/6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했으며, 남은 상속세를 최대 5년간 나누어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9년 1월 18일 LG 트윈스가 KBO에 구단주 변경 신청을 함에 따라 작은 아버지 구본준 부회장에 이어 LG 트윈스 구단주를 맡게 됐다. 이로써 구광모 회장은 KBO 리그 10개 구단의 구단주 중에서 최연소 구단주가 된다. 다만 실질적인 구단주 업무는 LG스포츠 대표이사인 이규홍 사장이 대신할 예정.


회장 취임 이후 이전의 보수적인 LG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굉장히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데 비주력 사업 정리와 국내외 경쟁 기업들과 연이어 소송전을 벌이고 있으며 마케팅에서도 경쟁 기업을 상대로 도발하는 등 달라진 LG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OLED TV와 LG 그램 광고가 레전드


라이벌 회사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계에 있으면서 서로 모르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구광모 회장보다 10살이나 많다보니...


2020년 10월 27일 이건희 회장에 조문하였다.


취임 이후 인공지능,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18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 LCD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특히 2021년 1월 20일에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했던 MC사업부 매각을 발표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MC사업부 매각을 발표한 날 LG전자 주가는 12% 뛰었다. 다만 직원들의 고용 불안도 있는지라, 어떻게든 고용은 유지하겠다고 했다.


 

 

 

 

 

허태수 프로필 나이 직업 현직 학력 부모 형제자매 

출생
1957년 11월 8일 (63세)
직업
기업인
현직
GS그룹 회장
FC 서울 구단주
학력
중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 / 학사)
조지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부모
아버지 허준구 어머니 구위숙
형제자매
형 허창수, 허정수, 허진수, 허명수
배우자
이지원
자녀
장녀 허정현(2000 ~ )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GS그룹 현 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첫째사위고, 둘째 사위인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는 동서지간이다.


2. 생애



1957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에서 허준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로 상경하여 중앙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졸업 이후 미국 컨티넨털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LG그룹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특히 GS홈쇼핑 대표이사 시절 모바일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며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3. GS그룹 회장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리되고 나서 15년만에 허창수 전 회장이 용퇴하면서, 허창수의 막내동생인 허태수가 GS그룹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구자열 프로필 나이 학력 가족 

 

출생
1953년 3월 2일 (68세)
학력
서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가족
아버지 구평회 어머니 문남
남동생 구자용, 구자균
여동생 구혜원
배우자 이현주
장녀 구은아
장남 구동휘
차녀 구은성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LS그룹 현 회장. 본관은 능성(綾城)


2. 생애



1953년 3월 2일, 경상남도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2]#에서 LG그룹 창업주 구인회의 동생인 구평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2년 서울고등학교(24회)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1979년 졸업하였다.


이후 LG상사에 입사해 뉴욕지사와 일본지역본부 이사를 지냈고 LG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서 국제부문 총괄임원을 역임했다.


2003년 LS그룹이 LG그룹과 분리된 이후에는 LS전선 부회장, LS전선, LS니꼬동제련, 엠트론 사업부문 회장을 거쳐, 2013년부터는 초대 구자홍 회장에 이어 LS그룹 2대 회장을 맡고 있다.


2009년 4월 10일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9년 제33대 고려대학교 교우회장으로 선출됐다.


3. 가족 관계


아내 이현주와의 사이에 장녀 구은아, 장남 구동휘, 차녀 구은성을 두고 있다.


아버지 구평회(1926년 ~ 2012년)는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동생이다. 큰아버지 구인회 회장이 첫째이고, 아버지 구평회 회장은 다섯째이다. LS그룹은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태회(넷째), 구평회(다섯째), 구두회(여섯째) 형제의 2세들이 공동경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구평회 회장은 아들로 구자열, 구자용, 구자균을 두었으며, 3형제가 모두 고려대학교 출신이다. 큰 동생 구자용(1955년 ~ )은 E1 회장이고, 작은 동생 구자균(1957년 ~ )은 LS산전 회장이며, 여동생 구혜원(1959년 ~ )은 푸른그룹 회장이다.


4. 이야깃거리


활동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스타일처럼 스포츠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특히 사이클에 대한 애착이 강해 한때 40여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도 있었으며, 2002년에는 독일에서 열린 '트랜스알프스 산악자전거대회'에 참가해 7박8일 동안 650킬로미터를 완주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맡아 아마추어 선수 발굴에도 힘을 쓰고 있다.

경영자로서 '상향식 소통'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사업장을 수시로 방문해 임직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현장의 고충을 듣고 즉각 시정조치하기도 한다. 평소 "나쁜 직원은 없다. 나쁜 리더만이 있을 뿐"이라며 리더의 역할을 중시한다고 한다

 

 

 

출생
1951년 12월 24일 (69세)

직업
기업인
현직
LX그룹 회장
학력
경남중학교 (졸업)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 / 학사)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부모
아버지 구자경 어머니 하정임
형제자매
형 구본무, 구본능
누나 구훤미
여동생 구미정
남동생 구본식
배우자
김은미
자녀
장남 구형모
장녀 구연제
경력
LG전자 상무
LG화학 전무
LG반도체 전무
LG반도체 대표이사
LG필립스LCD 대표이사
LG 트윈스 구단주 (2008 ~ 2018)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2010 ~ 2016)
창원 LG 세이커스 구단주 대행 (2010 ~ 2018)
LG 신성장사업추진단장 부회장 (2010 ~ 2016)
LG 부회장 (2017 ~ 2019)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재산
12억 달러 (한화 약 1조 3,400억 원)

 


1. 개요



LX그룹은 대한민국의 기업인. 본관은 능성(綾城)



2. 생애



1951년 경상남도 진양군(현 진주시)에서 구자경의 3남으로 태어났다. 구본무 회장과 구본능 회장의 동생이기도 한다. 경남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첫번째 직장생활을 했다. 그 뒤 귀국해 금성사(현 LG전자) 상무, LG화학 전무, LG반도체 전무, LG반도체 대표이사, LG필립스LCD 대표이사,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LG전자가 위기에 처하자 2010년 10월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제조업의 기초인 기술력과 제품에 대한 관심이 많고 시장선도에 대한 열정이 높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나 말에 거침이 없어 '직선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2016년 2월 LG전자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고 LG화학의 등기이사가 되면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등 LG화학의 소재부품 사업에 관여하였다. 큰형인 구본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 LG그룹의 경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하였다.


2018년 5월 20일 큰형 구본무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6월 29일 조카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1년 5월 1일 부로 (주)LG의 인적분할이 실행되면 LG상사와 LG하우시스 등 5개 계열사를 가지고 LG그룹으로부터 독립해 나갈 예정이다. 새로운 그룹 이름은 LX그룹이다.


3. 이야깃거리


1982년 야구단 창단 기회를 놓치자 참모를 갈궜던 아버지와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였던 첫째 형, KBO 총재까지 역임한 둘째 형과 더불어 매우 열렬한 야구광이다. 모교인 경남중 동문회 내 야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할 정도. LG 트윈스의 잠실 홈경기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8년부터 LG 트윈스의 구단주를 맡고 있다. 해마다 일본 전지훈련 캠프장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2010년부터 창원 LG 세이커스의 구단주대행을 맡았는데 창단 첫 KBL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2013-2014 시즌 종료 이후 LG 전자 임직원들에게 이례적으로 세이커스 농구 이야기를 했다.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김진 감독의 후임으로 팀에서 4년을 활약했던 슈퍼스타였던 현주엽이 후임감독이 될 때 어록이 있었다. "해보고 싶은 거 다해보소." 하지만, 지도자 경험 없이 덜컹 맡은 이후 대몰락을 당했다.


현재 LG주식회사의 지분을 회장인 구광모 다음으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4. 가족 관계


김은미씨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구형모(1987년생)와 딸 구연제 (1990년생)를 두었다.


딸 구연제는 당시 19살의 나이에 272억 원을 보유해 미성년 주식부호 1위를 차지했다. 아들 구형모는 LG전자에 입사해 본사에서 경영전략 업무를 하다가 아버지 구본준이 LG에서 독립하자 아버지가 따로 차린 LX그룹으로 합류했다.




 

 


1. 개요


LIG는 범LG계 기업집단.


2. 역사


처음 LG그룹에서 분가했을 때는 LG화재그룹으로 불렸으며 현재 그룹명인 LIG는 LG가 자사명을 럭키금성(LuckyGoldstar)의 약어로 인정하지 않고 Life's Good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 홍보하는 것처럼 Leading Insurance Group 또는 Life is Great라는 식으로 얘기하나 실상은 LG Insurance Group의 약어인 것인데 이 명칭도 모체인 LG의 약어 사이에 I를 넣은 것이다. 허나 약어라도 LG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으니 L로 시작하는 단어 중 Leading으로 치환한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모체였던 LG화재보험은 KB금융그룹에 매각되어 KB손해보험으로 바뀌어 없다(...). 보험이라는 단어가 회사 이름에 버젓이 있는데 보험업이 없다.


이 사연이 웃음도 안 나오는 게, 오너일가가 한창 재벌 놀이에 심취하고 있을 때 LIG손해보험과는 별도로 운영하는 경비용역회사 'TAS'를 통해 법정관리 중이던 건설회사들을 인수 합병하여 LIG건설(건영(인수 후 LIG건영)+SC한보건설[1](인수 후 LIG한보건설))이라고 하였는데,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CP(기업어음)를 발행하였다. 문제는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숨겼고, 법정관리 신청 10일 전까지도 사기성 CP를 발행하였다는 거.. 당시 CP잔액이 1,800억 이상에 달하였다. 이게 문제가 되어 사주들은 사법처리 되었고, 투자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그룹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금융사업을 팔게 되었다. LIG그룹 구자원-본상 부자 비리 풀스토리 금융업과 건설업을 정리한 현재는 그룹의 규모가 1/5로 줄어 들었으나 방산에 집중하기 위해 금융을 정리했다며 자기위안중이다.


방산부문을 키우기 위하여 2016년 초에 있었던 두산DST 인수전에 참여 하였으나 한화테크윈에 패배하였다. 7,000억원대의 인수가에서 두 업체의 제시가 차이는 500억 정도로 적었으나, 가격 이외 부분에서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더 벌어져 버렸다. 한화테크윈은 차입 없이 사내유보금만으로 인수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한 데 비해 LIG는 인수대금의 절반은 인수금융으로, 절반은 LIG넥스원 주식을 담보로 하여 산업은행에서 빌리기로 했단다. 결국 7,000억을 전부 땡빚 낸다는 거..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동생 구철회 회장의 가계가 독립한 것이 LIG그룹인데, 역시 LG가라 그런지 장자 상속의 경향이 강했다. 구철회의 장남 구자원 회장, 둘째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2], 셋째 구자훈 전 LIG손보 회장, 넷째 구자준 전 LIG손보 회장 의 형제공동경영시대가 지나고, 3세 시대에 접어들자 장손인 구자원의 두 아들인 구본상 전 부회장, 구본엽 전 부사장이 그룹의 중심을 맡게 된다. 이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사업이 잘 되면 모르겠는데.. 위 항목에 써 놓은 그 난리를 치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 하니 다른 일족들은 다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기에 뿔뿔히 흩어지는 형세다. 4형제 중 셋째인 구자훈은 슬하에 3녀밖에 없어 제외하고, 첫째인 구자원 계는 LIG라는 그룹명칭과 함께 남은 계열사 중 제일 큰 LIG넥스원, LIG시스템, 휴세코 등 을 가져 가고, 넷째인 구자준 계는 LIG인베니아를 가져 가는데 2016년 LIG를 떼어 버리고 인베니아로 사명을 바꾸며 계열분리를 하였고, 둘째인 구자성의 아들 구본욱은 LIG투자자문을 떼 내어 LK투자자문(現 LK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했다.


2020년 기준, 보험업을 매각하고 방위산업 위주로 운영을 하게 된 이후로 'Leading Innovation Group'이라는 슬로건으로 변경하기 위해 상표 변경을 올려둔 상태다.

 

 


1. 개요


아워홈은

2000년 1월 당시 LG유통(현 GS리테일) 식품서비스부문이 분리독립되면서 설립된 대한민국의 식품회사.


주력 사업은 식자재 유통 및 단체 급식이다. 1984년 전신인 희성산업이 식재 공급 사업에 뛰어든 것을 시초로 보고 있으며, 1987년 LG트윈타워 사원식당 운영을 맡으면서 급식 사업을 시작하였다. 자회사로 외식사업을 전개하는 캘리스코를 가지고 있다.


구인회 LG그룹 초대 회장의 셋째 아들 구자학이 회장으로 있으며, 지배주주로는 구자학의 장남 구본성(38.56%) 부회장을 필두로 삼녀 구지은(20.67%), 구미현(19.28%), 구명진(19.6%) 등 구자학의 자녀들이 98.11%를 지배하고있는 비상장사로서 범LG가로 분류된다.


구자학의 아내 이숙희가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 회장의 둘째 딸이기에 촌수로는 가깝지만, 이병철 생전에 삼성이 금성사의 영역이었던 전자사업에 진출하면서 두 그룹의 사이가 틀어졌고, 이건희와 이맹희의 소송전에서 이맹희의 편을 드는 등 사이가 좋지않고, 범 삼성계열에 삼성웰스토리ㆍCJ프레시웨이ㆍ신세계푸드같은 대형 단체급식사들이 있고 식료품 업체에 있어서도 CJ제일제당ㆍ래딕스글로비즈ㆍ노브랜드가 있어 사업적 관계도 크지않아 범삼성가로 분류하지는 않는 편이다.


아워홈은 내부거래 비중이 1%를 밑도는 재벌가에서는 특히한 케이스로 일컬어지지만, 사실 아워홈이 식품사업에만 집중하고 그룹으로서의 확장을 하지 않아, 관념적으로 범 LG계열로 분류되는 모든 회사들이 법적으로는 별개의 그룹으로 잡히기 때문에 그렇다.


2. 자회사


2.1. 캘리스코


사보텐, 타코벨 등의 요식업 체인을 운영하는 아워홈의 자회사. 삼녀 구지은이 이끌고 있다.



재벌가가 다 그렇듯이, 자회사지만 아워홈과는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원래 구지은이 아워홈 부사장이었는데, 오빠인 구본성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면서 경영권 쟁탈전 끝에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이동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워홈은 심지어 캘리스코에 대한 식자재 공급을 끊기까지 했다.


결국 2020년 3월, 캘리스코는 신세계푸드로부터 식자재 공급을 받기로 하였다. 홈페이지도 독립하여 사보텐과 타코벨은 캘리스코 홈페이지로 옮겨갔고, 아워홈의 A1포인트 적용도 중단되었다. 사실상 아워홈과 캘리스코는 남남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개요



LF는 범LG가로 분류되는 의류 생산 업체.


2. 역사



1974년 반도상사가 일본 도쿄스타일과 기술제휴를 맺어 패션사업부를 발족하여 '반도패션' 명칭을 쓰기 시작했고, 서울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근처에 1호점을 열었다. 1975년 신사복, 1978년 액세서리, 1979년 캐주얼패션을 각각 런칭시키고 1981년 미국 만사라스와 기술제휴한 뒤, 1982년에 죠다쉬, 1983년 닥스의 한국 라이센스 사업을 각각 개시했다. 1985년 경남 양산공장을 세우고 이듬해에 사옥을 구로구 독산동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86년 'B'자를 형상화한 형태로 BI를 변경하고 1990년 '타운젠트', 1991년 '티피코시'를 각각 런칭했다. 1994년 사업부에서 사업문화단위(CU)로 승격한 후, 1995년 럭키금성상사가 LG상사(현 LX글로벌)가 되면서 브랜드명을 'LG반도패션'으로 변경했다가 이듬해에 'LG패션'으로 바꾸었고, 사옥도 강남구 신사동 신사옥으로 옮겼다. 1999년 상사CU와 합쳐진 후 2001년 웹포스 시스템을 전국 매장에 확대했다. 2004년에는 구인회 회장의 둘째 아들인 구자승 LG상사 사장의 장남인 구본걸 부사장이 부문장이 되었고 2006년 LG상사에서 인적분할하면서 떨어져 나왔다. 2008년에 공식 온라인 쇼핑몰 '썸씽엘스'(현 LF몰)를 오픈했다. 2014년에는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후, LF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엘지패션의 줄임말 같다면 기분탓이다

 


1. 개요


깨끗한 나라는 대한민국의 제지류 제조업체로, 범LG가와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2. 역사


창업주 최화식(1919~1980)이 종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소학교 졸업 후 14세 때 생계를 위해 화신백화점 문방구점에 취직한 게 근원이다. 1945년 8.15 광복 후 서울 종로5가에 문구점 '덕문상사'를 개업한 후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백상지 등을 수입판매하다 정부의 국산화 방침에 따라 1960년 한국특수제지를 인수하지만, 1년 만에 일신상의 이유로 제지업에서 손을 뗀 바 있었다. 이후 1962년 일국증권(현 유안타증권)을 세워 증권업에 종사했지만 종이와의 인연은 여전했기에 결국 1966년 3월, '대한팔프공업'을 세우게 된 것이다.


창업 초기부터 펄프를 독자 생산하려 했지만 당시 나라 사정상 원료 수급이 여의치 않아 결국 백판지에 눈을 돌렸고, 1967년 의정부공장을 세우고 1972년 상공부로부터 수출입업 허가를 받아 해외 수출을 개시했다. 1975년 백판지 제품에 자체 브랜드 '화이트 호스'를 단 뒤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했고, 1976년 신양제지를 인수하고 1978년 종이컵 원지 제품을 생산했다.


1980년 최화식 사장이 세상을 뜨자 차남 최병민 전무가 경영권을 승계해 1982년 미국 MPI 사와 운반용 상자 생산/판매 관련 기술제휴를 맺었고, 1985년 금강제지를 사들여 화장지 등 위생용품 사업에 손을 뻗었고, 1987년 충북 청주공장을 준공하고 이듬해 미국에 첫 해외법인 '대한팔프USA'를 세운 뒤, 생리대 '라라센스'를 출시했다. 1989년 기저귀 '라라미미'를 출시한 뒤 제지연구소를 세웠고, 1991년에 대한펄프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1994년 하반기부터 슬로건을 "좋은펄프 대한펄프"라고 해서 로고처럼 사용하기도 했으며, 1997년 '깨끗한나라' 브랜드를 런칭하고 한국케이블TV다우방송 설립에 참여했다.


한동안 제지업을 중심으로 환경경영을 표방하며 내실을 다지다가 2009년 희성그룹으로 편입된 후, 2010년 전사적 ERP 시스템을 구축하고 2011년 브랜드명과 동일한 사명으로 바꿨다. 2014년 희성그룹에서 분리된 후 2019년 최화식 창업주의 손자 최현수가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3세 경영체제가 수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