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식 부동산 경제 정보

범 삼성가 가계도(삼성, CJ, 신세계,한솔) 이재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정용진 정유경 이명희 홍라희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세 아들들. 왼쪽부터 장남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차남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 삼남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이 사진을 찍고 몇 년 후 이창희 회장이 타계하였으며 이맹희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재산 분할 소송전을 벌였다가 이맹희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모두 타계하는 바람에 셋은 영영 화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이 되었다.

 

1. 개요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의 가족 관계다. 혈족은 경주 이씨 대파 판전공파(判典公派) 소파 사정공파로 언론 등지에서 범삼성家, 삼성 일가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항렬자는 경주 이씨 문중에서 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아래의 가계도를 보면 알듯이 삼성을 비롯 한국의 내로라 하는 재벌들이 그의 후손이다. 이들은 경제적 영향력에서 범현대가와 더불어 한국 굴지의 재벌가를 이룬다.

 

직접적으로는 삼성그룹, 신세계그룹, CJ그룹, 한솔그룹을 경영하고, 혼맥으로는 범LG가, 범한진가, 중앙일보 가문, 동아일보 가문등과도 크게 얽혀있다.

 

2018년 블룸버그에서는 부호 가문 순위로 발표한 "블룸버그 톱 25"에서 전세계 16위, 아시아 3위에 올랐다. 자산을 310억 달러로 추정했다. 포브스에서는 암바니 가문 (55조)과 홍콩의 리카싱 가문 (45조), 곽 가문 (35조), 인도네시아의 하르토노 가문 (33조)를 포함하여 7위를 차지했다.

 

 

 

2. 삼성 라이온즈

 

대부분의 기업이 삼성그룹에서 독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분리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간의 지분 관계는 끊어졌으나 삼성 라이온즈 만큼은 범 삼성가 기업들이 지분을 나눠 갖는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야구단만큼은 삼성가 형제들이 나눠서 공유하라는 이병철의 유지(遺志)라고 한다.

 

삼성그룹의 제일기획이 67.5%, CJ그룹의 CJ제일제당이 15%, 신세계그룹의 신세계가 14.5%를 나눠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가 남은 구단 지분 중 2.5%를 갖고 있다. 2021년에 신세계그룹이 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출범시키며 야구계로 진출하면서 신세계가 기존에 갖고 있던 삼성 라이온즈의 지분을 팔 것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신세계 측에서는 계속 보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3. 가계도

 


3.1. 1녀 이인희 (한솔그룹)


1녀 이인희 (1929 ~ 2019) 한솔그룹 고문 / 夫 조운해 (1925 ~ 2019) 강북삼성병원 명예이사장

한솔그룹 고문 이인희 프로필 출생 사망 부모 이병철 박두을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 학력 

출생
1929년 1월 30일
경상남도 의령군
사망
2019년 1월 30일 (향년 90세)
부모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형제자매
남동생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
여동생 이숙희, 이순희, 이덕희, 이명희
이복남동생 이태휘
이복여동생 이혜자
배우자
조운해
자녀
장남 조동혁
차남 조동만
삼남 조동길
장녀 조옥형
차녀 조자형
학력
대구여자중학교 (졸업)
경북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 / 중퇴

1981년 이병철, 이인희.

 

2006년 5월 29일 한솔제지 장항공장. 왼쪽부터 선우영석, 이인희, 조동길, 조동혁.
2015년 8월 27일 이맹희 빈소. 이인희의 마지막 대외활동이었다.


1남 조동혁 (1950 ~ ) 한솔그룹 명예회장 / 妻 이정남 (1953 ~ )

1녀 조연주 (1979 ~ ) 한솔케미칼 부사장

2녀 조희주 (1981 ~ )

1남 조현준 (1990 ~ )

2남 조동만 (1953 ~ )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 妻 이미성 (1956 ~ )

1녀 조은정 (1980 ~ ) / 夫 이준석 (1978 ~ ) 세하 이사

2녀 조성진 (1986 ~ )

1남 조현승 (1991 ~ )

3남 조동길 (1955 ~ ) 한솔그룹 회장 / 妻 안영주 (1958 ~ )

1녀 조나영 (1982 ~ ) 리움 큐레이터 / 夫 한경록 (1979 ~ ) 한솔제지 상무

1남 조성민 (1987 ~ ) 한솔홀딩스 기획팀 과장

1녀 조옥형 (1961 ~ ) / 夫 권대규 (1959 ~ ) HS창업투자 부사장

1녀 권애영 (1988 ~ )

2녀 권이주 (1995 ~ )

2녀 조자형 (1972 ~ ) / 夫 빈센트 추 (1975 ~ )

1남 양 추 (1999 ~ )

2남 경 추 (2004 ~ )



3.2. 1남 이맹희 (CJ그룹)

CJ그룹 명예회장 이맹희  출생 사망 학력 형제자매 배우자 자녀 

출생
1931년 6월 20일
경상남도 의령군
사망
2015년 8월 14일 (향년 84세)
학력
대구수창공립국민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도쿄농업대학 (농업학 / 학사)
도쿄농업대학 대학원 (농업학 / 석사)
미시간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과정 수료)
부모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형제자매
누나 이인희
남동생 이창희, 이건희
여동생 이숙희, 이순희, 이덕희, 이명희
이복남동생 이태휘
이복여동생 이혜자
배우자
손복남
자녀
장녀 이미경
장남 이재현
차남 이재환
삼남 이재휘
경력
삼성물산 부사장 (1968 ~ 1987)
삼성전자 부사장 (1968 ~ 1987)
제일모직 부사장 (1968 ~ 1987)
제일비료 회장[5] (1993 ~ 2003)
CJ그룹 명예회장 추대 (2015)

 



1남 이맹희 (1931 ~ 2015) CJ그룹 명예회장 / 妻 손복남 (1933 ~ ) CJ그룹 고문

1녀 이미경 (1958 ~ ) CJ그룹 부회장 / 前夫 김석기 (1957 ~ ) 前 중앙종금 사장

1남 이재현 (1960 ~ ) CJ그룹 회장 / 妻 김희재 (1961 ~ )

1녀 이경후 (1985 ~ ) CJ ENM 브랜드전략담당 상무 / 夫 정종환 (1980 ~ ) CJ 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

1남 정** (2013 ~ )

1녀 정** (2019 ~ )

1남 이선호 (1990 ~ )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관리팀장 / 妻 이래나 (1995 ~ 2016) / 妻 이다희 (1991 ~ )

1남 이** (2019 ~ )

2남 이재환 (1962 ~ ) CJ파워캐스트 대표 / 妻 민재원 (1967 ~ ) 前 재산커뮤니케이션즈 감사

1녀 이소혜 (1994 ~ )

1남 이호준 (2001 ~ )

3남 이재휘 (1964 ~ )


이창희 프로필 출생 사망일 사망지 부모 배우자 자녀 

성명/본관
이창희(李昌熙)/경주 이씨 판전공파
출생일
1933년 5월 24일
출생지
경상남도 의령군
사망일
1991년 7월 19일 (향년 58세)
사망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암센터
사인
혈액암
부모
아버지 이병철(1910 ~ 1987)
어머니 박두을(1907 ~ 2000)
형제자매
4남 6녀
배우자
이영자(1936년생)
자녀
장남 이재관
차남 이재찬
삼남 이재원
장녀 이혜진
학력
보성중학교 (졸업)
가쿠슈인대학 (화학 / 학사)
와세다대학 (상학 / 석사)
와세다대학 (상학 / 박사 수료)
이력
새한미디어 회장
3.3. 2남 이창희


2남 이창희 (1933 ~ 1991) 새한미디어 회장 / 妻 나카네 히로미 (1936 ~ ) 前 새한그룹 회장[

1남 이재관 (1963 ~ ) 前 새한그룹 부회장 / 妻 김희정 (1966 ~ )

2남 이재찬 (1964 ~ 2010)[27] 새한미디어 사장 / 妻 최선희 (1967 ~ )

1남 이준호

2남 이성호

3남 이재원 (1966 ~ ) 前 새한정보시스템 대표 / 妻 김지연 (1969 ~ )

1녀 이혜진 (1967 ~ ) 래딕스글로비즈 대표 / 夫 조명희 (1966 ~ ) 디엠퓨어텍 대표



3.4. 2녀 이숙희


2녀 이숙희 (1935 ~ ) / 夫 구자학 (1930 ~ ) 아워홈 회장

1남 구본성 (1957 ~ )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 妻 심윤보 (1961 ~ )

1녀 구미현 (1960 ~ ) / 夫 이영렬 (1955 ~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녀 구명진 (1964 ~ ) / 夫 조정호 (1958 ~ )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1녀 조효재 (1989 ~ )

1남 조원기 (1992 ~ )

2녀 조효리 (2001 ~ )

3녀 구지은 (1967 ~ ) 캘리스코 대표이사 / 前夫 지상욱 (1965 ~ )


3.5. 3녀 이순희


3녀 이순희 (1939 ~ )前 제일기획 고문 / 夫 김규 (1934 ~ ) 제일기획 상임고문 겸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장

1남 김상용 (1963 ~ ) 알머스 대표


3.6. 4녀 이덕희

4녀 이덕희 (1940 ~ )[41] / 夫 이종기 (1936 ~ 2006) 삼성화재 회장

1남 이권수 (1965 ~ )

1녀 이유정 (1971 ~ )


3.7. 3남 이건희 (삼성그룹)


3남 이건희 (1942 ~ 2020) 삼성그룹 회장 / 妻 홍라희 (1945 ~ ) 前 리움 관장

1남 이재용 (1968 ~ ) 삼성전자 부회장 / 前妻 임세령 (1977 ~ ) 대상그룹 부회장

1남 이지호 (2000 ~ )

1녀 이원주 (2004 ~ )

1녀 이부진 (1970 ~ )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 前夫 임우재 (1968 ~ ) 前 삼성전기 고문

1남 임동현 (2007 ~ )

2녀 이서현 (1973 ~ )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겸 리움미술관 운영위원장 / 夫 김재열 (1968 ~ )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 연구부문 사장

1녀 김지이 (2001 ~ )

2녀 김지수 (2003 ~ )

3녀 김지후 (2006 ~ )

1남 김성준 (2007 ~ )

3녀 이윤형 (1979 ~ 2005)


3.8. 5녀 이명희 (신세계그룹)


5녀 이명희 (1943 ~ ) 신세계그룹 회장 / 夫 정재은 (1938 ~ ) 신세계그룹 명예회장

1남 정용진 (1968 ~ ) 신세계그룹 부회장 / 前妻 고현정 (1971 ~ ) / 妻 한지희 (1980 ~ ) 성신여대 객원교수

1남 정해찬 (1998 ~ )

1녀 정해인 (2000 ~ )

2녀 정해윤 (2013 ~ )

2남 정해준 (2013 ~ )

1녀 정유경 (1972 ~ )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 夫 문성욱 (1972 ~ )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

1녀 문서윤 (2002 ~ )

2녀 문서진 (2003 ~ )

3.9. 4남 이태휘[편집]

4남 이태휘 (1947 ~ )(일본인 사이에서의 혼외자. 한때 이병철 회장의 총애를 받아서 호텔에서 가운만 입은 채 이병철 가신들한데 보고를 받았고, 그 무례함에 이건희도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러나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재산을 정리해서 일본에 정착했다고 한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마약 밀수로 구설수에 오른 리제트 리가 이태휘의 자식이 아니냐는 설이 있었다. 또한 2020년에 이건희가 작고하면서 현재는 이병철 회장의 아들들 중에 유일하게 생존해있는 상태다) 前 삼성그룹 비서실 이사

/ 妻 구라타 사토코 (1956 ~ )


3.10. 6녀 이혜자


6녀 이혜자 (1952 ~ )(일본인 사이에서의 혼외자로 이태휘와 친남매라고 한다. 일본에서 일본인과 결혼해서 2남 2녀를 낳았다고.)


4. 범 삼성가 기업 회장단

 

 

 

.

 



전자

삼성전자 | 삼성전기 | 삼성SDI | 삼성SDS | 삼성디스플레이 |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중공업

삼성물산 (건설부문) | 삼성중공업 | 삼성엔지니어링


금융

삼성생명 | 삼성화재 | 삼성카드 | 삼성증권 | 삼성선물 | 삼성자산운용 | 삼성벤처투자


서비스

삼성물산 (상사부문, 패션부문, 리조트부문) | 삼성웰스토리 | 호텔신라 | 신라스테이 | 제일기획 | 에스원 | 삼성경제연구소 | 삼성의료원 (강북삼성병원) |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바이오에피스


사회공헌


삼성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삼성서울병원) | 삼성언론재단 |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 삼성법률봉사단 | 삼성안전환경연구소 | 마이독 & 삼성(삼성화재안내견학교, 에스원 탐지견센터) | 삼성인력개발원


문화예술

삼성재단 (삼성문화재단 (삼성미술관 리움), 호암재단 (호암미술관, 호암아트홀) | 삼성화재교통박물관


창조경제

대구삼성창조캠퍼스


교육장학

성균관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 충남삼성고등학교 | 삼성재단 (삼성 장학회)


스포츠

삼성스포츠 (삼성 라이온즈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서울 삼성 썬더스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 삼성전자 육상단 | 삼성전기 배드민턴단 | 에스원 태권도단 | 삼성생명 탁구단 | 삼성생명 레슬링단)


범삼성가

CJ그룹 | 신세계그룹 | 한솔그룹


1. 개요


삼성(三星)은 대한민국의 최대 규모 기업집단이다. 2021년 기준으로 자본총액 기준 재계서열 1위이며 , 그 외의 시가총액 등 기업 평가 요소의 모든 영역에서 2위 그룹과 압도적 격차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기업의 규모를 제외하고서도,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이다.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이며 1938년 창업한 삼성상회(三星商會)가 모태다.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 69번지 일대며 현재는 그 일대에는 '크레텍책임'이라는 기계공구 및 산업용품 사업장이 있다. 옛 삼성상회 건물은 1997년 노후화로 인해 철거되고 대신 그 자리에는 높이 5.95m, 너비 8.7m의 삼성상회 재현 벽과 삼성상회 실물을 250분의 1로 축소한 청동 모형으로 구성된 작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북구 침산동 옛 제일모직 자리에 들어선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이병철이 당시에 살았던 집은 현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기업으로선, 전무후무한 세계구급 성공을 거둔 삼성전자가 그룹의 메인이며, 삼성물산이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재벌의 필수요소 중 하나인 순환출자 구조를 가졌으나, 2018년 이후론 삼성의 순환출자 구도는 전부 해소되었다. 현재는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와 삼성의 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가 기타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삼성그룹 사업체는 무조건 우리은행만을 유일한 거래처 은행으로 취급한다. 그룹 전체가 하나의 은행만을 취급하는 건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삼성은 이걸 진짜 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외환실력을 쌓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하는 중. 우리은행의 외국 지사 역시 삼성그룹 현지법인의 주거래은행이다. 원래 삼성그룹은 한일은행이 1958년 불하과정을 통해 초기 민영화될 때 한일은행을 소유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한일은행에 모든 거래처를 몰빵하고 유지한 관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국 제외 외국 파견지점을 보면 죄다 삼성그룹의 외국지사가 있는 도시에 같이 파견되어 있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삼성그룹은 그룹의 경영을 총괄하던 미래전략실의 해체 계획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계열사(관계사)들을 수직적 지배하는 조직으로서,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한편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후엔 계열사들이 각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룹 공채도 2017년을 끝으로 없어지고, 계열사별로 독자적으로 채용하는 체제로 바뀐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쓸 수 없게 됐다.한편 ‘그룹 홈페이지’나 ‘그룹 블로그’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2017년 4월 3일에는 삼성그룹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문을 닫았다. 이보다 앞선 2017년 3월 2일에는 그룹 사내 방송이 종료되었고, 3월 3일에는 그룹 기자실이 폐쇄되었다.기사


다만, 삼성 관계사간의 지분관계는 여전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룹이 해체한 것은 아니며, 삼성은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발표하는 기업집단이며 그룹 총수인 이재용이 실질 지배력을 행사하는 그룹이다. 또한, 언론에서도 사실상 삼성그룹의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상태이기도 하고 말이다.


2. 역사

주식회사 삼성상회


주식회사 삼성상회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8년 3월, 협동정미소 주인이던 이병철이 대구부 수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본 그룹의 시초이다. 당시 29세였던 이병철은 경상남도 김해에서 농지 투기에 실패한 후 심기일전을 굳히며 자본금 3만 원(2010년 기준으로 약 3억원 상당.)으로 삼성상회를 세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농산물 판매와 별표국수 판매 등 가볍고 기본적인 것으로 훗날의 삼성그룹 형태와 비교하면 차이가 현격히 나는 편이었다. 요즘에는 삼성이 일류 재벌 집단이라고 한다지만 초창기까지는 서민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던 곳. 전 CJ그룹 명예회장이자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 삼성상회는 지금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며 국수 공장이 매출은 늘었지만 정작 이병철 본인은 그 돈을 모두 공장 설비 투자에 쏟았고 이병철 일가 역시 공장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잤을 정도로 공장 상태가 열악하였다고 말했다. 오늘날 삼성과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었으며 가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 별표국수가 많이 팔려 매출액도 올라갔지만 대구에는 경북에서 1위를 차지하는 소표국수가 있었고, 2위인 풍국면도 있었다. 풍국면은 지금도 대구광역시 북구 만평네거리 북쪽 근처에 공장이 있으며 현재는 범 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의 국수 OEM 회사다. 결국 별표국수는 이들의 아성과 도전을 이기지 못해 폐업했다.


19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해 사업 확장의 발판을 마련한 후 1948년 서울 종로2가에서 조홍제와 함께 삼성물산공사로 재출범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으로 피난가 '삼성물산'으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전쟁 이후 국가를 지불보증인으로 세워 차관을 받아오면서 정경유착을 통해 점차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워 처음으로 제조업을 시작해 국산 설탕을 개발했고, 1954년 제일모직을 세워 국산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해냈다.


1957년에 한국 재계 사상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개시한 후 1958년 안국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처음 진출하고 이듬해에 한국 재벌 중 최초로 비서실을 설치해 기업집단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1963년에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및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을 세트로 인수했다. 1965년 중앙일보를 창간해 언론사업에도 진출하고 신문용지 자체 수급을 위해 새한제지도 인수했다.


그러나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으나, 1968년 경영 일선에서 복귀한 후 전자산업 진출을 선언하여 수원 공단부지를 매입했고, 이듬해 삼성전자 및 삼성-SANYO전기를 세웠다. 이후 1970년 삼성NEC를 세워 전자사업 확장을 개시하며 1973년 제일합섬, 임피어리얼, 1974년 삼성석유화학 등을 세우며 화학이나 관광분야 등에도 영역을 확장했고, 같은 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에 처음 손을 뻗었다. 1976년 본사를 태평로 신사옥으로 이전하고 1977년 삼성종합건설을 세워 건설업에도 손을 뻗고 1979년에 삼남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면서 2세 경영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1980년 한국전자통신을 인수한 후 1982년 프로야구단 삼성라이온즈를 창단하며 종합연수원을 열었고, 1983년 한국 최초로 64K D램 개발에도 주도했다. 1985년 삼성데이타시스템을 세워 전산사업에도 진출했고 1987년에 삼성종합기술원도 세웠다. 그해 11월 이병철이 사망하자 이건희가 가업을 이어받아 12월부터 회장이 됐고, 1990년대부터 친족분리를 진행해 1991년 신세계백화점과 전주제지, 1993년 제일제당을 각각 분리시켰다. 1993년 '신경영 선언'에 따라 로고와 기업이념 등을 바꾸고 1995년 한국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소그룹 제도를 도입했으며, 동년에 삼성자동차를 세워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1997년에는 외환위기로 구조조정을 거듭 단행해 2000년에 삼성자동차를 프랑스의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매각했고, 2008년 서초 삼성타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이건희가 쓰러진 후 이재용 체제하에서 2014년 삼성종합화학 등 4개 석유화학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고, 2015년 (신)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역합병해 '통합 삼성물산'을 출범시켰다. 2016년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컬사업부문을 롯데그룹에 팔고 2017년 2월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계열사별 독립/자율경영체제 전환 수순을 밟게 되었다.


3. 사명(社名)


본래 홈페이지의 설명에 근거하면 '삼성이라는 이름에는 끝없는 확장을 지향하고 있다. 삼(三)은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며,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이 빛난다는 의미'로 삼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2019년부터 삼성은 사명의 의미를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힘을 상징하는 숫자 3에 꺼지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는 별이라고 쉽게 풀어서 설명 해 주고 있다. 여기에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보다 재미있게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로는 'SAMSUNG'이라서 네티즌들이 '샘숭', '삼숭'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실제 미국인들의 발음은 쌤썽에 가깝다. 서양권 외국인들 사이에서 별명은 'Sammy'. same soon이라고 애플 삼성 소송전 관련하여 삼성을 비꼬는 별명도 있긴 한데...

러시아에선 Самсунг(삼숭크)라고 칭한다. 러시아에는 경제가 안 좋았던 시절 삼성이 자국한테 보여준 의리로 거의 자국 기업처럼 취급을 받는다.

일본어 정식 발음은 사무슨(サムスン)이라고 부른다. 옛날엔 ㅓ를 オ행으로 표기하는 관례에 따라 사무손(サムソン)이라 표기하기도 했는데 이러면 성서인물 삼손의 발음과 같아지는지라 삼성 입장에선 이러한 이름으로 쓰이는게 기업 인지도와 삼성에 관한 검색의 용이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어로는 그냥 三星을 중국어 독음으로 읽어서 '싼싱'이라고 발음한다.


4. 로고

 

 

 

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가 반영되어 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혀지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하여 동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 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을 나타내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기본 색상의 경우, 기존에 써 온 청색을 그대로 유지하여 영속성을 지니도록 했다. 그룹 공통색상인 청색(Pantone 286 C : M 80%+C100%)은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색으로 고객과 보다 친숙해지려는 세계 제일주의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상징하고 있다.

 

1993년 6월, 이건희는 그룹 사내방송 SBC의 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삼성 세탁기의 라인 작업자가 칼로 불량인 부품을 대충 깎아내서 조립하는 모습으로 삼성 세탁기의 불량률이 높아지는 현상과, 후쿠다 다미오가 "삼성그룹은 2류나 다름없다"면서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경영 방식의 모든 것을 바꿔야한다는 개선책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뒤,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꾼다"란 신경영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의 첫 번째 쇄신은 바로 로고 교체였다. 이전까지 파란 바탕에 사립학교 재단 로고 비스무리했던 그룹 로고가 존재했으나, 삼성전자, 제일모직, 제일기획, 제일합섬, 전주제지, 동방생명, 안국화재, 코리아엔지니어링, 한국안전시스템, 중앙일보, 제일제당 등 대부분의 관계사는 각기 다른 로고를 쓰고 사명도 통일되지 않았는데, 1989년 이후 삼성생명,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일부 계열사가 그룹 로고를 사용했다. 글씨 로고는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만든 '일중체'를 썼다.

 

같은 로고라도 업종에 따라 이니셜을 넣기도 하는데, 제일제당은 로고 중앙에 'C', 제일모직은 'W', 안국화재는 'U', 신세계백화점은 'D', 제일합섬은 'T', 한국안전시스템은 'V'를 썼다. 이렇게 다양한 로고들은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뀌게 되었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서 미국 L&M에서 직접 디자인했고,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파란색 타원 속에 S Λ M S U N G 이라 쓰인 로고다. 1993년, 이건희가 신경영을 표방하며 변경한 로고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파란색 로고다. 그러나 새로운 로고에 그룹 내 고위 임직원들은 단체로 최면에 걸렸는지 엄청난 거부감을 표출했다고 했으며, 특히 안국화재, 한국안전시스템 등 대부분의 사명을 삼성으로 통일하여 영업에 차질을 입힐 것이라 걱정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 많은 기업들이 로고와 회사명을 바꾸면서 도색 업체들과 스티커 제작 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맞았었다고 전해진다.

 

1938년 이병철이 창업한 삼성상회에서 당시 판매하던 별표 국수에 들어간 브랜드 로고를 삼성 CI의 기원으로 본다. 별표 국수에 들어간 로고는 삼성상회의 로고가 아니라 별표 국수의 브랜드 로고다. 이후 1965년에 그룹 로고가 제정되면서 CI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당시 삼성의 몇몇 관계사들은 그룹 로고를 응용한 로고를 사용했다. 신세계백화점 이나 삼성 라이온즈 가 대표적. 1969년에 설립한 삼성전자의 당시 CI를 삼성그룹의 CI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나 이당시에는 지금처럼 그룹 전체가 통일된 CI를 사용한 시기가 아니다. 현재의 CI는 이건희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 1993년 신경영 선언과 함께 기업 브랜드 쇄신을 목적으로 변경, 통일한 것으로 오벌(Oval) 마크라고도 한다. 세번째와 네번째의 차이가 뭔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오벌 마크 안에 들어간 SAMSUNG의 장평이 2005년 이후로 좁아졌다.

 

 

 


5. 경영이념과 기업정신


- 경영이념

1993년 이전

사업보국, 합리추구, 인재제일

1993년 이후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기업정신

1993년 이전 - 삼성정신

창조정신, 도전정신, 제일주의, 완벽주의, 공존공영

1993년 이후 - 삼성인의 정신

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


- 경영철학과 목표

1.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2.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3. 인류사회에 공헌한다


- 핵심가치

'인재제일, 최고지향, 변화선도, 정도경영, 상생추구

전자 DS한정 대표이사 이념 받들어 인재제일대신 보행안전 이라고한다


- 경영원칙

1. 법과 윤리를 준수한다.

2. 깨끗한 조직문화를 유지한다.

3. 고객, 주주, 종업원을 존중한다.

4. 환경·안전·건강을 중시한다.

5. 글로벌 기업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6. 근로시간 최대 하루 4시간을 지향합니다.


6. 슬로건


첨단기술 첨단경영의 상징 (1986~1987)

인재와 첨단기술의 삼성 (1988~1992)

고마움을 아는 마음, 감사할 줄 아는 사회 (1992~1993)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 (1992)

새시대를 열어가는 국민기업 삼성 (1993)

국민과 함께 세계로 도약하는 기업 삼성 (1993)

고객과 함께 세계로 미래로 삼성 (1994~1997)

세계일류 (1994~1996)

믿을 수 있는 친구 삼성 (1997~1998)

할 수 있다는 믿음 (1998)

새 천년, 새 삼성 (1999)

밀레니엄 프론티어 삼성 (2000)

디지털 프론티어 삼성 (2001~2002)

우리의 대표브랜드 삼성 (2002~2013)

함께가요 희망으로 (2003~2005)

해피투게더 (2006~2007)

고맙습니다 (2007)

더 뛰겠습니다 더 땀흘리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2008)

두근두근 Tomorrow (2009~2010)


8. 특징


레드오션의 강자, 패스트팔로우 전략 등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업계 선두 제품을 벤치마킹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삼성전자의 삼성 갤럭시의 초기시절 형성된 것이고 본래 삼성의 기업 DNA는 마켓크리에이터와 초격차에 가깝다. 기업 출범 초기 IT의 볼모지였던 한국에서 남들이 하지않았던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멈추면 도태된다는 위기의식이 삼성을 끊임없이 질주하고 발전하게 스스로를 훈련시킨다.[이러한 삼성의 특징은 20세기 최고의 기업 역전 사례로 손꼽히는 명성의 근원이다.


8.1. 사옥


2008년에 중심지를 서울특별시 서초구 삼성타운으로 옮겼다. 일단 삼성그룹 전체를 강남으로 옮기고, 구 태평로 사옥을 리모델링한 뒤 삼성의 금융 관련 계열사는 다시 태평로로 보내겠다는듯. 그래서 금융 계열사는 태평로에, 전자 계열사는 강남이라는 구도가 예측된다.


그러나 이재용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후 사옥은 또 다시 재배치됐다. 이재용이 계열사의 현장 중심 경영을 강조하면서 서초 사옥에 있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내보냈다. 삼성전자 본부는 수원 디지털시티로 이전했고 R&D와 디자인 관련 부서는 우면동의 R&D캠퍼스로 이전했으며 자금과 홍보 담당 부서는 구 태평로 사옥으로 돌아갔다. 삼성물산 역시 서초 사옥을 떠나 판교(건설)와 잠실(상사), 도곡동(패션)과 용인 에버랜드(리조트)로 각각 흩어졌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떠난 서초 사옥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삼성 금융 계열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삼성 서초 사옥에는 안습한 일화가 있다. 사옥 부지가 강남역 바로 옆에 있는데, 부지 안에는 윤빌딩이, 사옥이 바로 보이는 강남역 한 모퉁이에는 대각빌딩이 있어 삼성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빌딩을 피해 사옥 재설계를 해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일본법인 사옥은 그 땅값 비싼 도쿄 롯폰기 근처에 있었으나, 일본 법인이 2012년경 핸드폰을 판매하는 SEJ 법인(Samsung Electronincs Japan)과 반도체를 판매하는 SJC 법인(Samsung Japan Corporation)으로 나눠져서 SEJ만 롯폰기 Tcube에 있다가 2015년 이이다바시로 이전했다. SJC법인은 시나가와에 있다. 보통 일본 삼성하면 갤럭시를 판매하는 SEJ 법인을 생각하지만 실제 일본에서의 판매금액이나 비중을 볼 때 갤럭시는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고 오히려 반도체는 B2B에서 잘나가고 있다. 반도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듯.


삼성전자의 "공식적인" 본사는 수원. 회사의 법적 주소도 수원으로 되어있다. 왜냐하면 이병철이 전자 사업을 시작할때 현재의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에다 엄청나게 큰 땅을 사서 공장을 지어 시작했기 때문. 현재 공장은 용인이나 화성으로 이전하고, 연구소나 전국의 지사(광주, 온양, 기흥, 구미 등)들을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본사는 R1부터 R5까지의 5채의 빌딩과 그 주위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본사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


외부인은 영통문과 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내부엔 직원만이 중앙문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8.2. 엔진, 모터에 약하다


삼성테크윈이야 방위산업체이니 어쩔 수 없다해도 삼성자동차로 출발한 현 르노삼성자동차는 하필 시장이 과잉공급상태에서 시작해 제반기술없이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식으로 시작해서 실패했다. 르노와 닛산의 기술을 받았다지만, 어차피 남에게 사온 기술은 1세대 전의 기술이므로(파는 쪽도 기술을 써야 하니까) 기술에 적응하고 발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새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져서… 그리고 KAI는… 말을 말자.


모터가 달린 것도 약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백색가전류를 비롯해서 하드디스크, ODD 모두 잔고장이 많기로 유명했고 결국 이러한 사업은 다 정리했다. 대신 SSD에 투자하여 기존 1위 인텔을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중. 삼성은 SSD 이전에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인텔과 경쟁할 정도의 강자였다.


8.3. 참모 조직


8.3.1. 미래전략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회장 직속의 참모 조직이다.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그룹에서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실장 밑에 7개의 팀과 15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실장은 부회장, 실차장은 사장, 팀장은 부사장~전무이며, 150여 명 중 전무 이상 직급만 18명이다. 팀원은 대부분 부장 이상이고 최하 직급 과장이라는 무시무시한 직급 구성이 돋보인다. 각 계열사의 에이스급 부장들을 뽑아와서 몇년간 근무하다가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돌려보내는 식의 커리어패스를 가지게 된다. 그룹 전체에서 가장 인사고과 잘 받은 사람들이 최소 십수년 이상의 경력까지 갖춰서 150명 가까이 몰려 있으니만큼, 재벌 2~3세 한두 명이 회의를 통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전략과 상당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승진 속도 외에 연봉도 오른다. 실적 위기가 있는 해가 아니라면 늘 최고 성과급(OPI)을 받으며, 이는 남들보다 연봉 50%를 더 받는 것이다.


전략1팀장: 전략 1팀은 삼성전자 및 전자 관련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임무다.


전략2팀장: 전략 2팀은 전자 이외 계열사의 사업 구조조정이 주 임무다. 예를 들면 매각(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위산업 화학 관련 기업을 한화에 매각), 합병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상장(삼성SDS, 제일모직)을 주도했다. 하지만, 2015년 초에 단행된 조직 개편과정에서 1팀에 사실상 흡수되는 식으로 통합됐다.


커뮤니케이션팀장: 홍보 및 그룹 대변인 역할. 미래전략실 외에도 삼성전자 등 계열사마다 홍보팀이 따로 있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홍보 담당 인원이 3~4명이다.


기획팀장: 기획.


경영진단팀장: 감사 및 경영컨설팅. 20여명으로 구성되어 각 계열사의 감사팀을 통제한다. 사장급 인사도 감사로 자른 적이 있을 만큼 권한을 주고 있다. 제일모직의 대구 공장을 감사할 때 연못의 물을 퍼낸 뒤 물고기 숫자를 파악해 문제점을 따졌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화제였다고 한다. 감사 시 대상자의 수십년간 업무 이력, 가정생활, 술버릇과 주량, 은행거래, 동창관계, 거래처 인맥, 가족관계 등 개인 사생활에 관련된 소소한 사안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감사 외에 경영진단 기능도 수행한다.


준법경영실장: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인사지원팀장: 인사.


금융지원팀장: 2013년 신설된 부서.


미래전략실의 8개 팀들은 각기 최소 1~2개에서 3~4개에 이르는 TF를 운용해왔다. 각 팀 산하에서 운영하는 TF는 신사업 추진, 계열사 인수합병(M&A) 등 특정 사안에 따라 해당 계열사 담당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임무를 맡는다.[26] 이들 TF가 계열사 TF를 지휘하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 구성원들의 소속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2015년 3월에는 계열사 소속 TF 사원의 상당수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업무 부담이 너무 커서, 5년 정도 미래전략실에서 일하고 본래 소속 계열사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2012년에는 새벽 6시 30분~8시에 삼성전자 본관 42층 회의실에서 벌어진 회의를 소개하였다. 최지성 부회장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에 대한 발제를 하고 각 팀장들이 토론에 참여했다. 부사장~부회장에 가까운 고위 임원은 6시 반에 전원 참석해야 한다는 소리다. 이런 '아침회의'는 미래전략실 뿐만 아니라 각 계열사 CEO 주재로 거의 전 사업장에서 비슷한 시간에 열리고 있다. 일반 직원들의 출근은 8시 정도다.


과거 구조조정본부(구조본)나 전략기획실(전기실) 시절에는 실장의 지시에 반론은 없이 그 지시를 어떻게 수행할 인가가 결정됐다면, 미래전략실(미전실)로 전환된 이후에는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향을 찾는 작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 결과물에는 고졸 공채, 저소득층 채용 할당, 저소득층 중학생 방과 후 교실인 드림클래스 등이 있다.


2016년 12월 6일 있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청문회에서 이재용은 "국민 여러분이나 의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없앤다고 완전히 없애는건 아니다. GE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2월 28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밝혔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는 삼성그룹의 해체를 의미한다. 기사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체제로 전환하게 된다고 밝혔다.기사


8.3.2. GSG


Global Strategy Group


외국인으로 구성된 삼성 내부 경영컨설팅 조직이다. GSG엔 20여개국 출신 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매년 40~50여 명이 확충되며 비슷한 수가 삼성 계열사 해외법인으로 빠져나간다.


1997년&